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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니,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나의 경력의 무게

by 혜은


좋은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고 독서실에 가서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도, 들어야 하는 인강이 밀려있으면, 집으로 장소를 옮겨서 새벽 2~3시까지 공부했던 날들도 많았다.


생각해보니, 정말 하나도 쉽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겸손하게 별 것 아닌 것처럼 얘기하지만, 경희대를 내신 1.34등급으로, 내신 100프로+수능 최저 등급(2등급 2개 이상)전형으로 합격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경희대를 졸업하기 위해서 했던 4~5년간의 서울 살이도, 힘들었다. 하고 싶은 것들은 많고, 돈이 너무 없던 시절. 편의점 알바, 카페 알바 등을 하면서 여윳돈을 만들었다.




졸업 후 부산에 내려와서,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방황하다가 간 부산대 대학원은 또 어땠는가. 호기롭게 조교까지 했지만, 대학원에 대한 애정은 전혀 생기지 않았고, 교수님 명령에 한참을 걸어 교수님이 빌린 책을 부산대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때의 기분이란.


그러다가, 대학원을 한 학기 하고 27살의 어느날, 부산 에듀플렉스에 지원했고, 일 시작 전, 학생들 코칭을 담당하는 코치로도 일했고(아르바이트 개념), 본사 교육 받으러 3주를 서울에 올라가서 좁은 레지던스에서 다른 예비 학습 매니저들과 지냈고, 본사 교육을 1등으로 수료하고, 부산 다대포 에듀플렉스에 입사했다.


다대포 에듀플렉스는 우리집에서 편도 1시간 반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지하철도 타고, 버스도 갈아타야 했다. 중, 고등학생들을 담당하다보니, 밤11시쯤 마치면, 지하철 막차를 타러 재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1년 이상을 버텼다. 시험 기간에 계속 되던 주7일 출근, 정말 쉽지 않았다.




영어 강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 아래, 부산 에듀플렉스에서 나와서 부산대 앞의 어학원에서 파트 타임 영어 강사로 일할 때는 또 어땠더라. 3시간 수업을 위해서 오전에 집에서 3시간 이상을 수업 준비하면서 교안을 만들면서 살았다. 그때 문법 공부를 엄청 했다. 내가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그러다가 부산 석상수 영어학원에서 정규직 강사 제안을 받았고, 석상수 원장님은 서전학원의 메인 강사로 일하던 분이셔서, 존경하는 마음에 제안을 수락해서 정말 열심히 배우면서 일했다.


매일 일찍 출근해서 원장님께 문법을 배웠다. 그걸로 초, 중, 고 티칭을 했다. 지금 내가 아는 문법은 대부분 석상수 원장님께 배운 것들이다. 원장님 덕분에, 고등 문법까지 익혔고, 칠판 판서 연습을 했고, 강사로서의 튼튼한 기반을 다졌다.


초, 중, 고 문법 수업, 중등 내신 수업, 고등 모의고사 분석 수업, 고등 입시까지. 그때 다 책임지고 해봤다.


수업 준비 시간이 엄청 걸렸다. 시간에 쫓겨서 그때 학원 근처에서 자취도 했었다. 고등을 하다보니, 일요일 출근도 시험 기간에는 기본이었다. 정말 쉽지 않았다.




대형 학원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고등부 경력이 쌓이다보니, 동래 링구아어학원 시강(시범 강의)은 쉽게 통과했다. 면접 때, 문법과 독해 시강이 있었다. 정말 떨렸지만, 잘 해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은 Teacher Kate였다. 링구아에서 일할 때, 수업을 잘 하고 싶어서 수업 교재 5~6권을 안고 집에 갔다. 지하철을 탈 때, 교재를 꼭 안고 탔다. 솔직히 정말 무거웠다. 오전에 늘 수업 준비를 했다. 일요일에도 수업 준비를 했다.


독해 구문 분석을 중시하기에, 수업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래 링구아어학원은 수업 외에 관리 업무가 정말 많다. 정말 많이 바쁘다.


쉽지 않았지만 버텼다. 버티다 버티다가, 조금만 더 맘 편하게 일하고 싶어서 양산 코렘어학원으로 이직했다.




같은 프랜차이즈 학원이지만, 동래 링구아어학원과 양산 코렘어학원은 정말 분위기가 달랐다. 그 분위기에 적응하기에 시간이 걸렸다.


양산 코렘어학원에서 내가 수업하고 관리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다. 동래 링구아어학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바빴다. 그때 당시 영유 출신의 초등 높은 반들은 거의 다 내가 맡고 있었다.


중3 반도 내가 맡고 있었어서, 이 학생들이 고등학교 가서 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혼자서 '모의고사 특강'도 여름 방학 때 기획하고 한달간 진행했다.


다음 학기 교재 선정까지 내가 맡아서 하고 있었을 때, 나는 나의 교육 사업을 오픈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정말 쉽지 않았다. 저 위의 경력 한 줄 한 줄을 써내기까지. 모든 원장님들이 그러셨겠지만, 오늘 생각해보니 정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문득, 이 모든 과정을 버티고, 우리 원의 학부모님들께, 학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지금의 내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의 내가 그 과정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치열한 강사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사실 거의 일 중독에 가깝지만,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경력의 무게만큼이나, 남들의 경력 한 줄도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기에, 늘 겸손하게,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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