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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Sep 04. 2021

그래, 질문해도 괜찮아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니

어제 있었던 일이다. 고1은 고2와 수업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고2는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질문이 일절 없는데, 고1은 학생들이 발랄하고 수업 외의 말도, 질문도 많은 편이다.


다른 날의 질문들은 가볍게 웃으며 답했던 내가, 복합관계사 파트에서 받은 질문들에 긴장을 했다. 복합관계사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교안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학생이 날선 질문들을 계속하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고 보니 접속사 파트까지 끌고 와야했다. 두뇌를 풀가동해서 답을 하는데, 학생의 태도가 '어디 한번 나를 한 번 이해시켜 봐라'였다.


질문과 답이 5분 이상 오가자, 다른 학생들은 집중력이 흐트러진 듯 보였다. 시간이 지나 겨우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는데, 순간 많은 눈들이 의식되었다. 대학생 때도 유독 PPT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을 두려워하던 나였다. 그 이유는 자신 있게 발표한 내용에 내가 몰랐던 부분이 숨어있을까 해서였다. 그 때도 많은 눈들이 의식되었다. 그 눈들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두려웠다.




그래도 이번엔 좀 다르게 대처했다. 5분의 수업 시간이 남았을 때, 그 학생이 또 질문을 하려는 기미가 보여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게. 내가 ㅇㅇ이랑 대화의 시간을 좀 가져야겠다!"


그때부터 또 그 학생의 새로운 질문들이 쏟아졌고, 드디어 내가 명쾌하게 답을 줬을 때 학생의 표정이 비로소 밝아졌다.


"선생님, 이해했어요."


대학생 때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한 나는, 그 학생을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ㅇㅇ이가 질문을 참 잘했네. 질문하는 건 진짜 중요하고, 꼭 필요한 자세야. ㅇㅇ이 똑똑하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많은 눈들을 의식했다. 학생들 눈에 내 대답이 괜찮았을지, 나는 오늘 대처를 잘 한건지, 혹시 그 학생의 아까 그 날선 태도가 나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 나온 태도는 아닌지. 온갖 생각들이 들면서 수업을 마쳤다.




오늘, 그 학생이 친구와 함께 학원에 들어오며 인사를 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게 인사를 하고, 둘이서 장난을 치다가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나의 모든 걱정이 한순간 사라졌다. 나에게 당혹스러웠던, 어제의 수업이 학생들에게는 이미 잊혀지고 없었다. 그 학생은 내게 감정이 없었다. 그냥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앞으로는 수업을 준비하며 교안을 만들 때 학생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부분들을 미리 체크해서 수업에 임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학생들의 질문 앞에서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는 나를 위해서 말이다.


그래, 얘들아, 질문해도 괜찮아. 너희가 나한테 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잖니. 그거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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