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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Sep 07. 2021

저는 항상 치마만 입습니다

2013년 봄부터 나는 치마만 입어왔다. 2013년 이전에는 내가 바지만 입었었다고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왜 항상 치마만 입으세요?"


학생들이 한번씩 묻는다. 치마가 편해서 그렇다고 대충 대답하고 넘기지만, 그때마다 한번씩 생각한다. 내가 언제부터 치마만 입었더라...



2013년의 봄,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부산이 본가인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경희대 삼의원 기숙사. 4명의 학생이 한 방에 함께 사는 기숙사이다. 좁은 방에 4명의 학생들이 함께 살다보니, 절친이 되거나 아니면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방은 다행히 전자였다. 2학년 1명과 1학년 3명으로 구성되어 있던 우리방은 서로의 연애사를 공유할 만큼 끈끈했다. 이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다. 대전에서 온 경영학과 친구였는데, 학기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룸메이트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 친구는 유독 남자인 동기들과 친했고, 애교도 많았고, 여자가 보기에도 참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치마가 잘 어울렸다.



항상 바지만 입는 룸메이트들에게, 그 친구는 치마를 입으면 다들 더 예쁠 거라며 치마를 추천했다.


어느 날부터, 룸메이트들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에 치마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체형도 고려하지 않고 치마를 이것저것 구입했고, 실패할 때도 많았다.


그때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는 짧은 치마를 좋아했었다. 키가 작은 나는, 짧은 치마가 내 체형을 잘 보완해준다고 생각했다. 특히, H라인 스커트나 플레어 스커트를 자주 입었다. 상의도 치마에 잘 어울리는 상의들만 구입했다.


전공의 영향도 컸다. 호텔/외식경영학과에 진학했기에, 학과가 여초였고, 여성스럽게 치마를 입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학과 동기들처럼 치마를 입는 게 더 익숙해졌다.





학원에서 일을 시작하고서는, 긴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짧은 치마를 입기가 부담스러운 직업이었다.


특히, 머메이드 스커트나 긴 원피스를 많이 입는데, 내 체형에 이런 스타일이 짧은 치마보다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알게 되었다.




2013년 봄에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내게 잘 어울리고, 내 기준에 이보다 편할 수 없는 '치마'를 못 만날 뻔 했다.


그 친구를 오랜만에 생각하다보니, 짧은 치마를 입고 설렘에 가득 차서 캠퍼스를 누비던 내가 그리워진다. 어쩌면 나는 그때가 좋아서, 그때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직도 치마만 고집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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