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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Sep 10. 2021

저는 착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악인이 될테야

저의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진입니다

학생 시절, '착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나는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많이 봤었고, 혹시나 미움을 받을까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아이였다.


나의 어머님은 나에게 항상 겸손하라고 말씀하셨다. 스스로를 남 앞에서 칭찬하지 말고, 나에 대한 칭찬이 남의 입에서 나와서 내 귀에 들리도록 하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에서 손꼽힐 정도로 공부를 잘했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그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혹시나 잘난 척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서였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큰,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기에, 성공하는 미래를 위해서 지금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마음이 불행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 스터디 플래너에 매일 자신을 응원하는 말을 한 마디씩 적었었다. 바닥난 자존감을 어떻게든 채워보려는 발버둥이었다.


그때의 나는 나만의 '취향'도, '취미'도 없었고, 내가 욕심 내는 것을 선뜻 남에게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남들에게 나에 대해 말할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공부 빼고 잘하는 게 진짜 없어. 

 나는 공부만 잘 해."


저의 대학교 졸업식 날 사진입니다

부끄럽게도, 나의 그런 '착함'은 대학교 3학년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변하고 싶다고, 나도 모든 걸 놓고 숨 좀 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폭주했다. 대학교 때 과탑을 두 번이나 했지만, 공부를 놓아보고 싶었다. 날씨가 좋아서 본관에서 산책을 한다고 수업을 빠졌다. 하루에 친구와의 약속을 세 개씩 잡고 놀러 다녔다.


한강에 놀러 가고, 이태원에서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도 먹고, 대학로 소극장들에서 연극도 마음껏 봤다. 어학연수로 영국에도 한달 간 다녀왔다. 그냥 즐기고 싶었다.


그때 친구들이랑 많이 싸웠다. 원래 내가 친구들에게 모든 걸 맞춰주다가, 친구들보다 나를 우선하고 말하고 행동했을 때, 친구들은 내가 예전과 다르다며 화를 냈다. 그런 친구들이 과연 나와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싸우고 관계를 단절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내가 이런 걸 싫어하는구나. 친구 관계는, 연인 관계는 이런 거구나. 나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이 찾아왔다.


최근 저의 사진입니다

지금의 나는, 폭주하던 내가 잘 다듬어진 모습이다. 남의 눈치를 보진 않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하고 있다. 호불호가 확실하고, 내가 고수하는 부분은 밀고 나가지만, 남에게 피해를 끼칠 만큼의 과함은 아니다.


배움을 계속하고 있다. 대신 내가 배우고 싶은 것만 배운다. 나에게 재밌는 영어 공부를 하고, 클래스101에서 퍼스널 브랜딩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자기계발서도 종종 읽고, 독서 모임에 나가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도 나눈다.


나의 직장인 학원에서도 바른 말을 잘한다. 부당하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싫으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학생들에게 웃으며 대하다가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말이 있으면 단호하게 말한다.


모든 인간 관계도 주체적으로 맺는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따로 있다. 그 기준에 따라서 이 관계를 유지할 지, 그만할 지 결정한다.


그리고,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내 감정이다. 내가 행복할 일들만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집 막내딸, 마루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대상도 생겼다. 우리집 막내딸 '마루'. 내가 감정적으로 지칠 때 본가에 가는 이유이다. 마루가 나를 반겨줄 때, 모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고 내 머릿 속이 마루로 가득찬다. 마루는 나의 행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요새 학생들이 내게 얘기한다.


"선생님은 착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나도 대답한다.


"나는 착하진 않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든."


'착함'의 정의가 학생 때의 나 같은 거라면, 나는 착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악인이 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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