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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Oct 12. 2021

발전하지 않아도 괜찮아

Stay in this condition

2021년 5월부터 나의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는 'Upgrade'였다. 무난하던 일상에 변화를 주고, 새로운 시도들로 나의 삶을 장식하고 싶었다. 그 시도들이 나를 발전시킬 거라고, 업그레이드 시킬 거라고 믿었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서  부산에서는 규모가 큰 독서모임인 베이트리 북클럽을 6월에 신청해서 7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7월 첫모임에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독서에 기반한 지적인 대화, 서로 경청하는 따뜻한 분위기에 빠져버렸던 듯 싶다. 오랜 친구들과의 일대일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나는 나의 사고가 확장됨을 느꼈다.


그래서 8월에는 베이트리 북클럽의 온라인 글쓰기 모임인 '쓰기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월~금에 매일 한 편씩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글에 달리는 다른 분들의 따뜻한 댓글들이 좋았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글을 쓰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8월 중순쯤 <김미경의 리부트>라는, 코로나 시대에서 나의 생존법을 고민하게 하는 책을 읽고 나서, 온라인에도 나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서 클래스101에서 정혜윤 강사님의 퍼스널 브랜딩 강의를 결제하고,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해서 심사를 통과하고 하루에 두, 세 편씩 글을 썼다. 너무 즐거운 일상이었고, 예전보다 내가 발전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8월에는 베이트리 북클럽에서 하는 '넷플파티 영화제'가 있었는데, 넷플파티라는 넷플릭스를 보면서 함께 채팅을 하는 기능을 이용한 영화제였다. 그 영화제에 참여하면서 넷플파티 모임이 생겼고, 그 모임이 그 후로도 지속되면서 오프라인에서도 함께 영화를 보는 모임이 되었다.


그렇게 9월 중순이 되었다. 아침에 브런치와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글을 쓰고, 아침 운동을 하고, 수업 준비를 해서 출근하고, 주말에는 모임들의 연속이 루틴이 되었던 때였다.


여느때처럼 오프라인 영화 모임을 일요일에 갔다가 얼마나 피곤했던지 다음날인 월요일에 오후12시에 눈을 떴다. 급히 챙겨서 1시에 학원을 출근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법처럼 생각하던 루틴이 다 무너졌다.

지금 뭔가 잘못 되었다.'




그 한 주는 피로 속에 산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학원 일에 지장이 올 정도로 피곤함을 느끼자, 나는 드디어 내가 오버페이스 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현재 내가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는 믿음에 취해서, 브레이크 없이 몇 달을 달린 것이다.


그 때부터는 과감하게 나의 삶에서 '빼기'에 몰입했다. 온라인 글쓰기 모임을 중도 하차하고, 브런치에 '글태기(글쓰기 + 권태기)'를 선언하고 글쓰기를 쉬고, 10월 초의 이번 시즌 마지막 독서 모임에 빠졌다.


다시 나를 돌아보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서 10월 중순이 되었다.



나는 저번주 일요일에 안나수이 향수 하나를 나를 위해서 구입했다.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 한달이라는 기간동안 어쩌면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확장하지 않는, 팽창하지 않는 나도 여전히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그래. 발전하지 않아도 괜찮다.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를 어제 'Stay in this condition'으로 바꿨다. 이 상태, 이 상황을 유지하라는 말이 나에게 따스한 온도로 다가온다. 한동안은 업그레이드를 멈추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본업에 집중하며, 가끔 일상 속 생각들을 브런치에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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