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은 Aug 18. 2021

나의 안식처, 은설헌


방금 그린 이 그림은 나의 자취방에서 창문으로 밖을 바라볼 때 내 시야에서 보이는 장면이다(왼쪽에는 블라인드가 있다).


2019년 8월에 학원에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집이 북구 화명동이었고, 학원이 사하구 다대포에 있었으니,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서도 학원까지 가는 데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왕복 3시간. 그럼에도 나는 학원 근처에서 자취방을 구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학원에 대한, 일에 대한 애정보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안정감이 더 좋아서 그랬던 듯 싶다.


2021년 3월에 지금의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지금의 학원은 북구 만덕에 있다. 본가에서 걸어서 25~30분 정도인데, 이 가까운 거리에도 나는 올해 5월 중순부터 자취를 택했다.


학원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시험 치기 한달 전부터 시험 대비에 들어간다. 일요일에도 필요에 따라 2~3주 정도는 출근한다. 전쟁 같은 그 기간에, 나는 이동하는 30분 정도의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일에 욕심이 생긴 것이다.


별 고민 없이 5월 초부터 자취방을 알아보고, 5월 중순에 덜컥 계약을 했다. '이곳에서 일로 성공해보겠다', 후회는 없었다.


이 집이 내 집이 되자마자 한 일은 이름 붙이기였다. 내 소중한 독립공간에 이름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찾은 이름, '은설헌'.


은 은, 눈 설, 집 헌자를 쓴다. '청렴한 삶을 바탕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라는 뜻을 가진다. 조금 더 쉽게 접근하면, 풍요로운 대지 위에 처마 높은 집을 지어 널리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한다는 의미이다. 이 거창한 이름이 내 맘에 와닿아서 지금도 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은설헌에 산 지 3개월이 지났는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독서 모임에 가입해서 그 시간에 책도 읽고,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서 글도 쓰고, 요새는 강의도 결제해서 듣고 있다.


부모님과 적당한 거리감에 사이도 더 좋아지고, 출퇴근 시간을 절약해서 더 쉬다가 출근하니, 업무 효율도 더 높아졌다.


은설헌이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길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나에게는 이미 길을 제시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공간이 고맙고, 이곳이 진정한 내 안식처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인간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