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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Jun 28. 2022

'엄마'를 사랑해서, 벗어나겠습니다

어른아이

어제였다. 일하다가 세상 우울한 기분이 들어서 공강시간에 그 이유를 되짚어봤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생각했다. 비바람이 부는 날씨, 배고픔, 숙제와 단어테스트를 챙기지 않은 담임인 반의 학생들에 대한 실망감...사실 이 모든 것들이 다 정답이었을 수 있겠지만, 아마 내면의 이유는 '엄마'였을 거다.




우리 엄마는 나를 사랑하신다.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도, 사랑에서 나온 염려와 걱정을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엄마의 염려와 걱정에 기반한 뾰족한 말들에 다치곤 한다. 그 뾰족한 말들은 가끔 나를 긍정적으로 변하게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감정을 상하게 하고 지나가고 만다.


나는 저번주 주말에 정말 사소한 이유로 엄마와 갈등을 겪었고, 쏟아지는 뾰족한 말들에, 엄마에게 가족들에게 이런 말들로 상처를 주는 게 잘못되었다고 맞받아쳤다.


사실, 그게 이성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맞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다만, 나의 말에 감정이 상한 엄마를 보는 게 너무 힘들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엄마의 감정선은 비슷했다. 내가 기쁘면 엄마도 기뻤고, 내가 슬프면 엄마도 슬펐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했었고, 엄마를 실망시키기 싫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다. 엄마는 내게 너무 소중한 존재니까.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여전히 어른아이다. 여전히 엄마를 실망시키는 게 무섭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내 말을 하는 내가,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 날은 왠지 모르게 기가 죽어있다.


'의존성'이라는 단어로 이 상태를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에 대한 나의 의존성은, 어른이 된 내게는 어쩌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내려야 할 때, 엄마의 의견이 내게 너무 큰 영향을 끼친다면, 엄마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엄마의 의견을 따른다면, 나중에 그 선택에 대해서 오롯이 내가 책임감을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어른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오롯이 설 수 있을까.




엄마와 말을 하지 않은 지 3일째다. 보통 같았으면, 내가 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에게 사과를 했을 기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기다리려고 한다. 내 감정은 결국 내가 다스려야하는 부분이고, 엄마의 감정도 결국 엄마가 다스려야 하는 부분이다.



그 부분을 오랜 기간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엄마와 대화가 오가는 따뜻한 일상이 좋아서, 엄마의 뾰족한 말들을 결국에는 용인하고, 내가 먼저 백프로 진심이 아닌 사과를 건네왔다.



엄마와 나의 감정은 이제, 분리되어야 한다. 30살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나도 이제 한 명의 어른으로서, 엄마에게 존중받고 싶다. 나의 의견을 솔직하게,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엄마'를 사랑해서, 벗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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