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엉망일 때 코코아를 마시면 -1-

지금 위안이 필요한 당신에게

by Lina

이것은 실로 같잖은 사랑 이야기이다.


내일은 나의 결혼식이다.


6년간 사귀던 A에게 차였다.

우리는 중학생 때 처음 만났다. 그가 먼저 내게 고백해 왔다.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근사한 꽃다발과 함께 작은 선물을 주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너무 설레어서 가슴이 뛰는 소리가 A에게까지 들릴 것 같아 난 가슴을 두 손으로 꼭 눌렀다. 그때 받은 목걸이는 아직도 내 목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10대의 대부분은 A와 함께였다. 그가 없는 내 인생은 공백과도 같았다. 의 모든 것을 바쳐 그를 사랑했다.


나는 지금 어수선한 나의 마음 한가운데 서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목표는 결혼이었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은 예로부터 나의 오랜 꿈이었다. 내게 있어 남편과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따뜻한 요리가 가득한 밥상으로 그를 맞이하는 꿈을 꾼다.


요즘은 결혼이 필수인 시대가 아니다. 비혼과 독신주의가 새롭게 떠오르며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져가고 있었다. 본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능력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현모양처가 좋다.

나의 능력없이 남편의 능력에 기대어 가능한 전업주부를 하는 것이 꿈이다. 아이와 남편에게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그들을 든든히 지원해주는 영원한 응원자가 되고 싶다.


A와 사귀는 6년간 언제나 A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상상속에 있었다. 그는 유쾌했고 재밌었다. 훤칠한 외모의 그는 웃을때 희고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아이같이 웃는다. 그는 언제나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는 종종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아버지는 말없이 짐을 싸서 집을 나가셨다. 울며 불며 아버지의 다리에 매달렸지만 아버지는 매정하게 나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집에는 어머니가 내던진 온갖 그릇이며 유리잔이 깨져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나는 심한 애정결핍에 젖게 되었다.

난 내 자신을 오롯이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다.


내 가장 친한 친구 J는 내가 평생동안 결혼하지 못한다에 자신의 오른팔을 걸겠다고 했다. 깜짝 결혼발표를 했을 때 J는 거의 눈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나는 행복하게 웃었다.


나는 눈이 높다. 학력도 능력도 외모도 성격도 보지 않는다. 남자를 볼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감정이다. 난 내가 좋아하는 감정이 들지 않으면 남자를 결코 사귀지 않는다.


나는 나쁜 남자에게만 좋아하는 감정이 든다.


A는 사귄지 얼마 되지 않아 내게 담배를 억지로 물려주었다. 내가 켁켁대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이러면 안 된다고 나쁜 일이라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이 들었지만, A가 나를 시시한 여자라고 생각해서 버림받을 것이 두려웠다. 난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


나는 그의 모든 행동이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었다. A는 둘만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가볍게 하고 다녔다. 때로 A는 내 입에 술을 들이붓고 가 취한 모습을 촬영했다. 촬영본은 종종 내가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의 심심풀이가 되었다. 술은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썼고 기억이 드문드문 끊겼으며 가끔 옆에 A 없이 깨어나기도 했다.


J는 나와 A가 사귄 게 아니라 내가 이용당한 것이라고 했지만 난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는 A의 눈과 거기에 담겨있는 감정을 믿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를 그렇게 따스하게 바라보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오는 날 내게 우산을 씌워 우리집까지 바래다주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게 그렇게 다정하게 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A와 헤어지면 평생

다시는 남자를 못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현재 모든 것이 엉망이다.


J는 진심으로 나의 결혼을 만류했고, 나는 결혼식 전에 결혼할 남자에게 맞았다.


우린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


-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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