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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석 May 01. 2018

나만의 ‘룰’로 시장을 지배하라

〈나는 다른 것을 본다〉-8화-

‘어째서’ 다른 지가 중요하다


“무슨 분식이 이렇게 비싸요?”


인생도 그렇지만 사업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재료비는 그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최종 마지노선이었다. 그는 최고의 재료로 조리한 음식만을 고객에게 선보이길 바랐다. 고추장만 해도 가장 비싼 태양초 고추장의 골든 라벨을 고집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음식을 먹어본 대부분의 고객들은 맛있다며 칭송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분식치고 비싸다’고 말했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고민 끝에, 그는 자신이 간과한 부분이 있음을 깨닫는다. 호텔 커피숍은 일반 커피숍보다 커피값이 몇 배는 더 비싸다. 하지만 누구도 호텔 커피숍의 바리스타에게 왜 이리 비싸냐고 따지지 않는다. 호텔의 서비스나 분위기가 그만큼‘ 다름’의 가치를 갖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도 자신의 브랜드에‘ 다름’을 입히려 했다. 사실 이미 제품에는 뛰어난 맛과 재료라는‘ 다름’이 삽입되어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기에 그 다름은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브랜드가 가진 다름을 두 가지 언어로 표현했다. 첫 번째는 프리미엄이었다. 인테리어와 메뉴, 그릇 등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강조했다. 두 번째는 분식이란 이름 대신 ‘Korean Casual Dining’이란 개념으로 접근했다. 더 이상 고객들은 가격에 대해 묻지 않았고,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분식에 대한 편견은 사라졌다. 오리지널 프리미엄 분식의 원조로 불리며 미국, 홍콩, 태국 등 세계 곳곳에 진출한, 스쿨푸드 이상윤 대표의 이야기다.



뒤집고 또 뒤집어라


초경쟁 시대다. 다르지 않으면 경쟁에서 잠시도 버틸 수 없는 치열함이 지배하는 시대. 모두들 기존과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절치부심하며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뜯을 정도다. 불황이 심해지고 마케팅 수단이 범람할수록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지는 것이 바로‘역발상’이다. 평소의 선입견이나 통념을 뒤집고 익숙한 것마저 낯설게 만드는 전략. 위에서 언급한 스쿨푸드의 전략 역시 분식은 저렴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프리미엄’이라는 가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역발상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역발상은 무엇보다 임팩트가 강하다.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시선을 끌기 쉽고, 평범함에 담긴 비범함을 찾는 이들의 욕구를 끄집어낸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금융상품에 역발상이 응용되기도 했다. 금융상품은 일반적으로 금액이 높을수록, 신용이 높을수록 금리가 높다. 그런데 국민은행의 대학생 전용통장 ‘ 락樂스타Star’는 100만 원 이하의 소액 예금에는 연 4%의 높은 금리를 책정하지만, 100만 원을 초과하는 부분에는 연 0.1%의 이자만 준다. 독특한 이 통장은 출시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21만 명이 넘는 대학생이 가입했다. 통장 평균 잔고는 20만 원 수준이다. 얼핏 봐서는 손해까지는 아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은행이 얻는 이득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은행으로서는 1인당 연 9,000원 정도의 이자를 주는 대신 경제력이 크지 않은, 은행으로서는‘ 참 애매한 고객’인 21만 명의 대학생을 예비 고객으로 확보한 셈이다. 다른 마케팅 수단을 사용해 그만큼의 대학생을 고객으로 확보하려면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브랜드 네이밍에서도 역발상이 가능하다.‘ 놀부’라는 한식 프랜차이즈 매장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한국 사회에서 놀부는 욕심의 상징이지 않은가. 일단 발상이 남달라서 매장을 찾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적어도 음식점 이름으로는 배부른 놀부가 굶주린 흥부보다 낫다는 사실을. 욕심 많은 놀부가 먹던 밥상처럼 한 상 푸짐하게 차려서 내놓는다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엉터리생고기’라는 프랜차이즈도 마찬가지다.‘ 엉터리’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실속이 없다거나 실제와 어긋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브랜드는 시골 장터에서 툭툭 썰어내는 고기처럼 세련미는 없지만 푸짐한 인정이 느껴지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오히려 엉터리라는 반어적 표현이 강력한 신뢰감과 친숙함을 선사하는 반전의 도구로 먹혔다. 설탕 대신 소금을 넣은 커피, 튀기지 않고 오븐에 찐 도넛은 어떤가? 커피전문점 파스쿠찌의‘ 솔티 아포가또Affogato’와 오리온에서 만든‘ 튀기지 않은 도넛’은 고정관념을 깬 이름으로 자신을 알린 케이스다.



다르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 한 번 뒤집어보거나 꼬아보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때로는 이런 일에‘ 촉’과‘ 감’이 매우 발달했다고 혼자서 겸손치 못한 평가마저 내린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일정 정도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촉매제가 될 수 있으니. 골프장에서 ‘OB’는 터부시되는 개념이다. 만일 당신이 골프장에서‘OB’가 새겨진 골프공을 선물받는다거나, OB를 냈는데 OB맥주를 선물로 받는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우리 사회에서는‘OB’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두 가지 있다. 먼저‘ 올드보이Old Boy’다. 졸업생, 선배를 뜻한다. 두 번째는‘ 아웃 오브 바운즈Out of Bounds’로, 주로 골프경기에서 패널티 2타가 주어지는 장외場外타구를 말한다.


‘OB’와 OB맥주. 올드보이는 그래도 맥주와 어느 정도는 어울린다. 주로 시니어 그룹을 가리키고 모임과 관련해 많이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골프장에서 OB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아니, 가장 피하고 싶은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OB맥주’ 브랜드를 리뉴얼하면서 골프장에서도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한물간 브랜드, 17년 동안 외면당하고 잊혀져 가던 OB라는 브랜드를, 그것도 OB를 떠올리기도 싫어하는 골프장에서 프로모션을 한다고? 당연히 모두들 말렸다. 당연히 한술 더 떴다. 심지어 골프공에도 OB를 새겨서 나누어주자고 했다. 결과는? 믿을 수 없이 좋았다.

그 밖에 골퍼들이 OB를 내더라도 OB 특설 티에서 보기를 하면(OB버디라 부른다) OB맥주 6팩을 증정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비록 OB를 범했지만 한 번 만에 그린에 올려 실수를 빨리 만회하기를 응원하는 의도였다. OB 특설 티에도 종전의 커다란 하얀 공 대신 대형 OB 맥주캔을 세워두었다. 골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OB를

범해 짜증났던 마음이 다시 밝고 경쾌해진다는 것이었다. 골프공도 마찬가지였다. OB내지 말라고 OB가 새겨진 골프공을 나눠주며 OB는 ‘Oh Beautiful!’이라고 설명해주었더니, 아기자기한 관심과 일종의 유머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OB 골프공이 생각보다 꽤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공으로 티샷을 해야 OB를 내지 않는다며 꼭 받으려는 골퍼들이 생겨날 정도다. 사소한 역발상이 리뉴얼한‘OB맥주’ 마케팅에도 큰 기여를 한 것 같아 그저 뿌듯할 따름이다. 다르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다름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골프공에‘OB’를 새기는 것이 사소한 역발상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이 모든 전략의 기저에는 실수를 빨리 만회한 골퍼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자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살면서 (누구나 겪었을) 한 번쯤의 실패는 거뜬하게 이겨내는 선배들의 맷집에 경의를 표하자는‘ 의미 있는’ 다름이기도 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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