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사람 경험
영어 속담에 ‘모르는 악마보다 아는 악마가 낫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낯선 상황에서 사람이라는 존재는 좋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잘 모르는 것보다 익숙한 것을 선호한다.'라는 뜻이라는데 호주행을 고민하면서 이 말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나는 익숙함을 찾아 여행하러 나왔나?'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미지(未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삶의 과정은 그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고 행동하느냐다. 비록 죽음 때문에 그리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떠난 여행이지만 여기서 죽을 순 없지!
인천에서 출발한 자전거 여행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까지 14500km를 달렸다. 출발한 지 만 1년째 되는 날, 서호주 퍼스(Perth)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자전거 세계여행의 기간을 7년 더 늘렸고 지구 두 바퀴 거리를 달리게 만들었다.
7개월의 중국 여행, 5개월의 동남아 여행을 끝내고 만 1년 만에 서호주의 주도인 퍼스에 도착했다. 새로운 1년을 새 나라에서 시작하기에 좋을 거라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며 호주 생활을 시작했다.
일자리가 너무 급했고 간절했다. 퍼스에서 멀지 않은 곳, 케이플(Caple)이란 도시에는 워홀러들에게 지옥의 농장이라 알려진 브로콜리 농장이 있다. 해병대, 특전사 출신들도 몇 백 달러나 하는 보증금을 두고 도망간다는 소문과 지옥같이 힘들다는 체험자들의 후기로 인해 경쟁률이 적을 것 같아 지원을 했다. 그러나 나는 자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상심할 여유가 없었다. 숨 쉬며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돈이 새 나가는지라 빨리 일자리를 잡아야 했으니까. 그곳이 보증금 수백 불을 놓고 도망갈만한 사람을 뽑는다는 사실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호주에서 처음 접한 커뮤니티는 교회였다. 교회라는 존재의 이유처럼 그곳에서는 좋은 일만 생길 수 있을까? 난 순진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신앙생활을 목적으로 온 사람도 있지만 다른 목적으로 온 사람도 있기 마련인걸 왜 간과했을까.
새로 온 사람들은 일자리 정보가 적었기에 교회는 커뮤니티는 직접적인 정보를 얻기 좋은 곳이었다.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새 워홀러들은 계속 유입되었기에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도와주면 다른 누군가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호의를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일자리 정보를 주는 상황에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심하게는 관계가 끊어졌다. 필요한 것만 빼먹고 사라지는 이들도 부지기수였으니.
숨겨놓은 악함을 드러내 사람의 선의를 왜곡하고 짓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에 따라 가면을 바꿔 써가며 자신의 이익을 젠틀하게 취하기도 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한 무슨 짓이라도 괜찮은 건가? 돈이 그렇게 만든 걸까? 상황이 그렇게 만든 걸까?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인가?
내가 인생을 많이 산건 아니었지만, 호주에 오고 나서 이전엔 몰랐던 사람 경험을 했다. 외국의 교민 사회가 이런 곳이었나? 차마 글로 남기기 힘든 이야기를 포함해 인터넷에서나 떠돌던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를 실제로 겪으면서 초반에 사람에 대한 정을 붙이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모멸감이란 단어의 뜻을 여기서 느꼈다.
일자리 찾는 일은 너무나 고단했다. 2012년은 호주의 워킹홀리데이로 크게 목돈 땡겨 온다는 뉴스가 여기저기 나던 때였고 비자법으로 나이 제한을 둔다는 소문까지 났다. 게다가 호주 환율의 급등으로 많은 워홀러들이 비슷한 시기에 호주에 몰렸다. 또한 멜버른, 시드니 등 동부의 대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서부로 왔다. 일자리는 안 잡히는데 교제권 내 사람들과의 스트레스 때문에 심적으로 엄청나게 힘들었다.
충격적이게도 구직 중 두 발이 되어주던 자전거까지 도둑맞았다. 당시 남은 돈으로 길어야 2주 생활비가 전부였던 상황이었다. 정말 노력했음에도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에 절망만이 가득했다. 노력만으로 안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다. 도저히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어 타 지역으로 가기 위해 결심했는데 떠나기 전날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일하러 오라고.
짧은 기쁨이 있었으나 곧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허탈감과 동시에 짜증스러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노력해도 안되더니 떠나려고 마음먹은 때 이런 소식이 들려오는 것은 뭐란 말인가? 나는 안 되고 내가 도와준 친구는 쉽게 취업이 된 일을 기억해가며 그동안의 과정을 이해하려 애쓸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호주에 도착해서 곧바로 일할 줄 알았던 예상과는 달리 일자리를 찾는데 무려 약 한 달 반의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의 심적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때의 시간은 8년간의 세계일주 기간을 통틀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 이면에는 내가 생각지 못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었다. 안 보면 그만인 교회 모임을 왜 그렇게 지속하려 했을까? 한국에서 익숙한 생활 패턴을 자연스레 따라한 것이었나? 난 아는 악마가 없어서 모르는 악마가 있는 호주로 왔다. 돌이켜 보면 그 악마는 내게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물론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였지만.
이걸 깨닫기까지 치른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컸다. 사람은 미지의 두려움과 그에 대비하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익숙한 악마를 선택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결과도 우리의 예상을 자주 빗나간다. 자신감을 갖고 호주까지 왔지만 인생은 누구나 초보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외국에서의 구직활동을 통해서 이 여행이 또 내게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 걸까 기대감을 갖고 본격적인 호주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