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을 만드는 쉬운 방법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 우리나라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는 훨씬 커졌고 국제적 위상이 올라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역사와 경제 성장을 잘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된 것에 대해 큰 찬사를 보낸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한 것이 있다. 내가 만난 보통의 선진국 사람들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문화, 사회 시스템에 찬사를 보냈고 개도국 사람들은 빠른 경제 성장을 칭찬을 했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보다 그렇지 않은 나라가 훨씬 많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동남아, 동유럽, 아프리카, 중동에서 만난 이들 중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을 적지 않게 만났다. 가장 큰 이유는 돈벌이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들 중 일부는 한국으로 오기 위해 브로커 수수료를 벌고 있었고 한국으로 가서 정말 성공할 수 있을지 깊은 염려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돈을 벌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내게 묻곤 했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이라는 워런 버핏은 자신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그중 자본주의 경제의 부흥 시기에 태어난 것을 가장 큰 행운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난 세계 여행을 하면서 버핏이 한 말의 뜻을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운 좋게도 나는 한국에 태어나 개도국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나라의 시민권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
복수의 나라들을 한 번에 다니는 여행자라면 우리나라의 힘을 유독 실감할 때가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여권 지수는 세계 3위로, 무려 190개국을 무비자나 도착비자로 쉽게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중남미에서 여행할 때 숙소에서 옆 나라 비자를 얻지 못해 길게는 몇 주간 머무르며 기다리는 여행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비자를 기다리며 아까운 시간과 체류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는 불평을 했다. 내가 세계일주를 하면서 100여 개국을 지났지만 비자 획득 자체에 어려움(그래 봤자 시간과 약간의 수고로움)을 겪은 나라는 이란과 수단, 딱 두 나라뿐이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생득적으로 국적을 갖는다. 여행 중 이 국적 때문에 자기의 능력과 의지와는 관계없이 태생적 한계를 갖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회조차 안 주어 지는 사람, 이혼하고 싶어도 국가 시스템과 종교적인 이유로 할 수 없는 사람, 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정치 시스템이 허락하지 않는 등의 형태로 그들은 족쇄에 묶여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 전만 해도 난 다른 나라 사람들이 비자를 얻을 땐 절차적 불편함 정도만 있다고 알았다. 그러나 그들과 대화해 보고 나서야 비자를 얻는데도 출신 국가별로 차등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 나라, 대한민국 비자를 얻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사실도 알았다.
만약 내가 그들의 입장에 있다면 어땠을까? 내가 하는 여행이 가능했을까? 아니, 꿈이라도 꿔 볼 수 있었을까?
마케도니아(현 북마케도니아)에서 그리스로 이동 중이었다. 위험천만하게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찻길을 걷고 있었다. 철길을 걷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고 나서야 알았다. 이란과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들임을. 나만큼 꾀죄죄한 몰골로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않은 아기를 데리고 걷고 있던 십여 명의 사람들. 그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기찻길을 따라 이어지는 곳으로 수십일 동안 걷고 또 걷고 있다고 했다. 벌써 10년째 내전에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꿈꾸는 삶을 살기 힘든 이란. 난민들은 평생 자기가 살아온 터를 등질 수밖에 없었다.
"죽지 않기 위해 떠났고, 살기 위해 우리는 걷고 있어요. 우리는 독일로 갑니다."
여행 출발한 지 6년 차, 매일의 적당한 즐거움이 식상해지고 있던 때였다. 내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그들의 몇 마디 말에 나를 되돌아보고 나서야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 다행히도 한국인이라서. 그리고 좋은 시기에 태어나 전쟁을 겪지 않을 수 있어서.
세상에 당연한 게 과연 얼마나 될까?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을 누구는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 길 위의 만남이었다. 여행을 떠나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세상이었다.
두바이에서 겪은 우연의 연속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내게 벌어졌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실패에 멈추고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삶의 그 강력한 요소, 운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안 좋은 것만을 보고 주변 만을 탓만 했을 거다. 어쩌면 여행도 중간에 핑계를 대고 그만뒀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들은 삶의 중요한 부분이 '운'임을 인지하고 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주역이나 타로 카드, 점, 굿 또는 신께 기도를 하는 방법으로 운을 잡으려고 하거나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며 자기에게 운을 가져다 줄 어떤 계기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과연 그 운이 그렇게 만들어지는지 또는 알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경험을 통해 겨우 깨닫는 내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어도 느낄 수는 있다. 그리고 그건 지나온 과정에서 반복된 것을 통해 부분, 나같은 보통의 사람이 살면서 운을 만드는데 기본 요소는 사람과 행동이라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난 속 시원한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어느 나라든 당장 움직일 수 있었던 내가 어떻게 비자를 얻을 수 있는지를 그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저 그들이 부러워할만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이 전부였다.
여행 중의 즐거운 시간도 익숙함에 젖어 권태로워지던 차, 난민들을 통해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을 보고 나서야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을 발견했다. 그렇게 운이란 존재를 인지하고 나서야 알았다. 난 '어쩌다 좋은 나라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