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을 넘어 경험으로
'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외치며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많은 부분을 '몸'으로 사는 여행을 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한 번쯤 겪는 고민 중 하나인 '모르는 나를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한 가지는 분명하게 배운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체험을 넘어선 경험이라 생각한다.
체험과 경험의 차이는 뭘까? 마케터 강민호 님의 설명을 빌려보면 행위 가운데 얻는 정보 획득이 체험이고 정보 획득을 넘어 저마다의 감정을 만드는 것은 경험이라 한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 경험했다고 하지 체험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당사자가 여행 과정에서 정보 획득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감정 형성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리라.
여행을 두고 자주 '고생'을 이야기한다. 뻔한 서사임에도 자주 깨달음이란 말로 연결되는 이유는 과정을 거친 당사자만 가질 수 있는 특권, 바로 경험으로 만들어낸 본인만의 감정 때문이 아닐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얻은 성취감 덕분에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지만, 과정이 워낙 힘들어 몸이 기억하는 독특한 감정이 있다. 비슷한 경험에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내 8년간의 여정 중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곳이라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나라의 수도인 볼리비아 라파즈에서다. 이후에 있을 우유니 소금 사막을 건너며 며칠간의 캠핑까지 계획하고 있었기에 상당한 양의 음식을 준비했다.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가기 위해 분지 속 계곡의 형태를 띤 라파즈 시내를 벗어나려면 해발 3600미터가 넘는 꼬불꼬불한 길을 이동해야 했다. 미리 알았다면 버스에 짐을 싣고 이동하고 싶었을 정도로 힘들었다. 80kg가 넘는 바퀴 달린 짐을 끌면서 언덕길을 오르는 동안 이런 숨쉬기는 처음이었다.
오르막의 경사에다 높은 고도 속 열 걸음, 조금 완만하면 스무 걸음을 걷다 제자리에 멈춰 가쁜 숨을 달래야 했다. 라파즈 시민들이 타는 낡은 버스가 5km 밖에 안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무려 30분이나 걸린다는 사실을 내 폐가 증명하고 있었다.
겨울이었음에도 땀이 터졌고 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숨쉬기는 더욱 힘들었다. 이를 꽉 깨물고 온몸으로 자전거를 밀었던 탓인지 앉아 쉬는 동안 팔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정상에 다다를수록 이동 속도는 점점 느려졌고 악을 쓰며 자전거를 한 걸음씩 밀 때마다 몸의 팔다리가 저려왔다.
마침내 정상인 4150미터 대의 엘 알또(El alto)에 4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발부터 꼭대기에 도착까지의 시간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우유니 소금사막을 횡단하며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황홀함을 느꼈다. 앞서 힘든 시간이 값졌다고 느꼈음은 물론이다.
4년 뒤, 이와 비슷한 경험을 스위스에서 또 한 번 했다. 아무리 밀어도 올라가지 않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며 속으로 내가 지금 여길 왜 올라가고 있지를 몇 번이나 질문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라파즈 시내를 벗어날 때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산 정상에 도착해 느꼈던 큰 성취감! 게다가 주변의 풍광은 멋진 수채화 액자 하나를 선물 받는 느낌이었다. 좋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파스에서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비슷한 경험임에도 스위스의 산 풍광이 우유니만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비슷한 고생임에도 결과가 차이가 커서였을까? 이걸 알아차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독자분께서 남기신 '젊어서 그렇게 고생하면 나이 들어서 많이 고생합니다.'라는 말에 무심코 빠져들고 나서야 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세계적인 여행지인 우유니 소금 사막을 지나면서 앞선 고생을 왜 그렇게 포장하려 들었을까? 사람이 힘든 건 힘든 건데 센 척 대단한 척해 보고 싶은 심리 때문이었을까? 멋진 결과를 얻는데 과정의 고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말은 헛소리였다. 힘든 시간 자체가 고생이고 어려운 건데. 생각과 감정의 불일치를 직시하고 나서야 내가 나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음을 알았다.
모험 속 자신을 찾는다면서 몸으로 남 따라 하기 속 자기 찾기는 억지였다. 그 기만을 깨닫고 나서야 앞선 두 체험이 비로소 '내 것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저 '좋았어! 환상적이었어!'를 넘어선 나의 감정이 녹아든 경험으로.
여행 중 유독 한국 친구들로부터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살아?'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지들은 단순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난 자신의 삶인데 나이가 들었을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생각을 한다고 대답한다.
남의 뜻을 자기 것으로 여기고 산들 세상에 뭐라 할 사람 없고, 자신을 모르고 산들 또는 평생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살아도 상관없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살아간다면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알 수나 있을까?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 살지 않다가 내 몸이 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난 나를 어떻게 느낄까?
여행자들이 자주 말하는 "내 두 발로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다리에 의지해서 와야 한다."는 말에 동감하는 내 성격적 특성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의지대로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니까.
그래서 나는 믿게 됐다. 보이지 않는 운을 경험해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듯이 모르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경험만큼 확실한 게 없다. 체험을 넘어선 경험에 깨달음이 있다. 그리고 모르는 나를 찾는 위대함과 온전한 자신을 아는 방법은 경험으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