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저마다의 모험이 있다
계획한 프랑스 일부 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3주의 시간을 만들어 영국으로 넘어왔다. 영국 여행의 최우선 순위는 단 한 가지, EPL 직관도 아니었고 세계적 수준의 뮤지컬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세계 일주를 출발하기 전에도 있었던 소망 한 가지, 언젠가 영국에 가게 되면 꼭 들러보겠다고 다짐한 곳이 있다. 바로 대학시절부터 좋아했던 작가,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유명한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인 C.S.Lewis가 묻힌 곳에 한번 가 보고 싶었다.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닌 저 멀리 잘 모르는 외국 작가의 무덤에 뭐하러?
대학생이 되고 나서 인생에 도움이 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쉬운 방법은 바로 책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20살이 되었을 때 친구가 C.S.Lewis의 작품을 소개해줬다. 루이스는 사람들에겐 작가이자 옥스퍼드 대학 문학 교수로 알려져 있지만 철학적으로 심도 있는 책을 여러 권 펴낸 사상가이자 비평가, 변증가 이기도 하다. 20대에 읽었던 그의 작품에서 이성의 깊이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의 사상과 철학을 알아갈수록 내게 주는 놀라움은 굉장한 깨달음이었다. 성인이 되면 꼭 이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멋있었고 세련되어 보였다.
대학 시절부터 좋아한 작가였었고 만약 영국에 가게 된다면 내가 할 리스트에 당당히 있던 한 가지 소망 중 하나였기에 그가 잠든 곳에 한번 가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죽어서 말이 없는 그 사람, 그가 평소 생활했던 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보고 싶었다.
난 그가 죽은 뒤 고향인 북아일랜드 주도 벨파스트(Belfast)에 묻힌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그가 묻힌 곳은 그가 일했던 옥스퍼드에서 멀지 않았다. (그의 무덤이 그의 고향 벨파스트에 있었다면 700km를 더 달려 그곳까지 갔었을 거다.) 그는 실제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사망 후 인근에 있는 트리니티 처치에 묻혔다.
영국 특유의 오락가락하는 비 내리는 날씨는 루이스의 무덤을 가는 날에도 예외가 없었다. 수 차례 멈추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교회로 이동했다. 실제로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긴장의 심호흡을 한번 내 쉬며 조용히 무덤 주변을 살폈다. 비 온 뒤의 축축함은 교회 건물 틈과 이끼에 있었고 그 무거움은 습한 공기에까지 스며있는 것 같았다. 그 음습함 때문에 죽은 사람을 실제로 보는 것도 아닌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루이스의 무덤을 방문하는 사람을 위해 이곳엔 'C.S.Lewis Grave' 라는 안내 표시가 있지만 작게 표시해 놓은지라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무덤 위 이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덤 위에 놓인 인형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작품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사자, 아슬란이 있었다.
영국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해 보고 말리라는 20대 때 적어 놓은 다이어리 속 희망사항이 10년이 지나 마침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의 무덤 곁에 서서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거창한 걸 기대한 건 전혀 아니었다. 유명한 고인의 무덤에서 특별한 의식을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지난 시간 나의 소망이 이끈 마음 때문이라도 뭔가 특별히 할 말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왔네요. 루이스 씨. 안녕.... 여기까지 오는데 한참... 걸렸네요."
그의 무덤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나도 모르게 뱉은 말이다. 길게 돌고 돌아 이 시간 그의 무덤 앞까지 와서 지난 8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한 게 겨우 저 혼잣말이었다. 뭔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는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20대, 그의 책을 읽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나잇값을 하는 것, 어른이 되는 것, 책임 있는 인생을 사는 것에 대해 필요하다고 자각한 것 같다. 동시에 미래에 대한 꿈과 내 세계일주에 대한 소망도 동시에 커가고 있었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의 가장 큰 재미는 대학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보는 일이었다.)
그가 누워있는 곳에서 그의 삶을 떠올렸다. 루이스는 독신으로 살던 중 영국으로 넘어온 미국인 조이 데이빗먼을 알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친분이 깊어졌다. 이성이 특히도 발달했던 사람, 루이스였다. 그는 그의 감정이 자신의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직시하고 받아들였다. 그 후 2명의 자녀가 있던 조이를 자신의 아내로 받아들였다. 그때 그의 나이 60살이 다 되어서였다. 결혼 전 루이스는 골수암이 걸린 걸 알고도 그녀와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짧은 시간을 둘이서 함께했고 조이 사후 3년 뒤 루이스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 <섀도우랜드Shadowland>로도 알려져 있다.)
새 울음만이 트리니티 교회의 침묵을 깨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일지 모를 고요함 속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눈물이 났다.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진 않나 싶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지고 있는 내 모습에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답답함과 공허함에 눈물이 흘렀다. 잘 이해되지 않는 눈물의 이유에 다시 웃음이 났다.
지구 두 바퀴 거리를 굴리고 나서야 얻은 이 느낌이라니..... 밀려온 허탈감은 컸다. 여행을 출발할 당시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길에서 보낸 시간이 이미 8년 차임을 다시 떠올렸다. 외면적으로는 매일 살펴보는 내 모습이 익숙해져서인지 얼굴의 주름살마저 원래의 있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고, 내면으로는 나이가 먹어간다는 느낌이 들던 차에, 오늘 이 자리에서 여행 초기에 생각해 보지 못한 내 모습이 보였다.
간절한 바람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노력과 시간을 들여 자전거 세계여행의 최종 목적지까지 한 바퀴씩 줄여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남들에게는 무모해 보이는 길고 긴 자전거 여행이 새 삶을 한번 더 사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드라마틱한 과정이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그 이유로 경험이 지나온 길을 다시 살펴보게 했다. 그것은 평생 살며 가질 수 있는 한 개인의 추억이라는 표면적인 것보다, 있었음에도 인지하지 못한 과거의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항상 거기 있었지만 그냥 지나쳐 온 과거의 '나'라는 아이를 발견했다.
다음 날, 다시 한번 그의 무덤을 찾았고, 평소 자주 걸었다는 루이스의 이름을 딴 공원에도 왔다. 그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이 분위기 속에서 루이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떠올리며 산책길을 걸었다.
공원 한 바퀴를 돌아보면서 번잡한 마음을 살폈다. 이 당시엔 몰랐지만 간절히 원했던 세계일주의 끝이 보일 때 즈음에야 알았다. 어제 발견한 내 마음속 가난했던 소년이 어릴 적 너무너무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지금에라도 이뤄주고 싶었다는 것을. 목표를 정해놓고 달려간다는 성인의 내 모습이 스스로 자랑스럽다는 생각은 둘째치고 어릴 적 품었던 꿈을 멋진 이유로 포장해 이뤄주고 싶었나 보다.
어릴 때 가난해서 못 가졌던 로봇 장난감을 구입하는 어른의 심정이 이런 걸까? 어른이 되어서 발현되는 소망은 어린 시절의 비슷한 욕망에 기인할 수 있다는 말을 루이스의 공원길을 걸어보며 생각해 보게 됐다. 어쨌거나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가장 먼저 나 자신이니까.
겨우 이것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였다. 남들에겐 시답잖아 보일지 몰라도, 이 사실을 깨닫는데 나라는 사람에게는 지구 두 바퀴의 거리를 달릴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나 보다. 그 8년간의 시간은 어쩌면 애써 무시한 내 마음속 꿈꾸는 소년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루이스 또한 그가 어릴 때 손으로 만드는 걸 원하는 만큼 하지 못해서 잘하고 싶었다는데 나도 그랬다. 나도 남들처럼 내 마음속 그 녀석의 원하는 바를 그렇게 이루어 주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