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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Feb 16. 2020

설화의 아빠 01.

아빠와 마카롱






  설화는 눈을 떴다. 아침 볕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렸지만, 아직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몽롱한 상태였다. 오래간만에 꿈에 아빠가 나왔다. 아빠가 꿈에 나오는 날이면 설화는 부러 이불 안에서 더 꼼지락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머릿속에 남은 잔상을 끌어안으며 일찌감치 제 곁을 떠난 아빠를 추억했다. 아직 남아 있을 때 실컷 그리워해야 했다. 빛에서 숨기 위해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겨 덮고 지난 밤 꿈에 저를 찾아온 아빠가 한 말을, 아빠의 움직임을, 아빠의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이 기억을 힘으로 설화는 적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더 살 힘을 얻었다.


  설화는 아빠가 나온 꿈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아빠는 꿈으로도 저에게 오래 남아 있지 않았다. 설화가 어떤 딸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아빠는 얼른 왔다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 않으면 설화는 소가 되새김질하듯 아빠를 떠올리고 꿈을 재생하고 그리워하느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죄다 내던져 버렸을 테니까. 설화는 가끔 그런 아빠가 원망스러웠지만, 참 아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설화가 슬퍼하지 않을 정도만 머물렀다가 떠났다.


  오늘은 친구와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설화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어렸을 땐 그다지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떡 대신 함께 들어간 어묵이나 소시지를 포크로 쿡쿡 집어 입에 옮기곤 했었으니. 아빠는 설화가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몰랐다. 설화는 아빠가 떠난 후에 떡볶이를 찾아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설화는 괜히 서운해졌다. 아빠에게 저가 떡볶이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어서.

   

  얼마 전, 설화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쓴 글을 읽었다. 떠난 아빠와의 마지막을 추억하는 슬픈 글이었다. 설화는 그 글이 끝나도록 내내 울었다. 부러웠다. 그 사람이 아빠와 나눈 이야기가, 남겨준 것들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일말의 기회가. 설화는 서럽게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가 꿈에 나온 것 같았다. 울던 설화가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아빠는 마이쮸를 좋아했다. 오백원을 설화의 손에 쥐여주며 포도맛 마이쮸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설화도 마이쮸를 좋아했다.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로 마이쮸를 사오면 아빠와 함께 나눠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매번 마이쮸만 찾는 아빠에게 물었다. 이거보다 더 맛있는 게 많은데 왜 이것만 먹냐고. 아빠는 허허 웃으며 그냥 맛있으니까- 하고 대답하며 마이쮸 하나를 입에 넣었다. 설화는 나중에야 알았다. 아빠가 왜 마이쮸를 좋아하는지. 설화가 아주 어렸을 적 아빠는 크라운제과에서 일했고, 거기의 소장님이었던 걸 기억해냈다. 마이쮸는 크라운제과에서 만든 거였다.    


  다시 돌아와 설화는 아직 이불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빠가 꿈에 나왔다는 사실 외에는 제대로 기억나는 게 없었다. 이상하게도 아빠의 잔상과 함께 머릿속을 맴도는 건 마카롱 하나였다. 아빠는 마카롱을 먹어본 적이 없다. 설화는 생각했다. 아빠가 마카롱을 먹어봤다면 분명 좋아했을 거라고, 설화에게 돈을 쥐여주며 마카롱을 사다 달라고 했을 거라고. 작고 달콤한 간식을 좋아하는 아빠는 분명 마카롱에 홀딱 반해 주말마다 설화와 함께 맛있는 마카롱 가게를 찾아다녔을 거다. 엄마의 눈을 피해 둘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손을 잡고 미리 찾아둔 가게에 가서 커피와 함께 달콤한 간식을 즐겼을 거다. 상상만으로도 설화의 입가에 웃음이 돈다.    


  아빠는 입이 짧았다. 은근히 가리는 것도 많아 엄마는 언제나 짜증을 냈다. 음식을 해주면 맛있게 먹는 법이 없다고, 다시는 해주기 싫다고. 설화는 엄마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아빠 대신 반찬을 잔뜩 집어 입에 넣었다. 엄마는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빠를 몰랐다. 엄마와 달리 설화는 그걸 알았다. 설화도 군것질을 무척 좋아했다. 엄마 몰래 책상 서랍에 초콜릿을 숨겨 두고 먹곤 했으니까. 아빠는 설화의 서랍을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갔다. 딸은 아빠를 닮았다.    


  설화는 마카롱을 조금 베어 물고 놀란 눈을 하는 아빠를 상상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세상에 맛있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 마이쮸가 제일 맛있는 건 줄 알고 있던 아빠가 그리워졌다. 눈물이 나지 않게 억지로 삼키며 생각했다. 아빠와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남겨놔야겠다고. 혼자 기억하고 있는 아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엄마에게는 답답한 남편, 고모들에게는 안쓰러운 막내, 큰아빠들에게는 철없는 동생.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 키가 작아 마음에 들지 않던 사위, 정에 흔들려 다 퍼주던 친구, 좋은 웃음 퍼주던 거래처 사장.  

  

  설화는 마음에 묻고 드러내지 않았던 시간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설화의 아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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