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시작할 것인가.

내 밥벌이를 하게 된 계기.

by 눈꽃



나는 청개구리이다.



환절기면 감기를 달고 산 것처럼, 나는 이제껏 중2병을 달고 살았다. 사춘기의 열병도 끔찍하게 앓았고, 다른 사람은 오춘기, 육춘기까지 끝났지만 아직도 사춘기처럼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첫 딸인 나에게 기대가 컸다. 당신이 이루지 못했던 무언가를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자식을 성공시켜서 나중에 자랑거리로 삼으려고 했던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머리가 크기 전까지 엄마의 그늘에서 살아왔다. 엄마에게 나는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딸”이었다. 지금 엄마와 그 주제에 대해 말다툼 한다면 끝도 없이 쏟아낼 수 있을 텐데 성격상 할 말이 많으면 하지 않아버리는 탓에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일곱 살. 멜로디언을 가지고 놀다가 엄마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을 찾았다. 그 이후로 나는 피아노 건반이 박힌 학원 가방을 메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샛별음악학원. 피아노 연습 한 번에 포도알 색칠 한 번. 피아노를 치는 건 재미있었다. 악보를 읽는 것에 애를 먹긴 했지만 나중에는 악보를 읽는 다기 보다는 음을 외워서 연주했고, 선생님 앞에서는 악보를 읽을 줄 아는 척 했다. 다른 사람들이, 특히 선생님 앞에서는 못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왜냐면 나에 대한 이미지를 잘 만들어 두어야 엄마에게 혼나지 않았으니까. 주위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 했지만 말이다. 몇 년 후 내 남동생도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3년에 거쳐서 배운 것을 동생은 3개월 만에 해냈다. 학원 선생님은 엄마에게 말했다. 음악으로 자식을 키우고 싶으시다면 딸 보다는 아들이 나을 것 같다고. 나를 피아니스트로 키우고 싶었던 엄마의 꿈은 음악적 재능이 없다는 말에 좌절되었다.



열두 살. 학교 시험에서 일등을 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그래서 나는 과학 영재 반에 뽑혀 방학동안 특별 수업을 들었다. 엄마는 내가 엄청난 과학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시골구석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열두 살이 되던 해 여름 도시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과학을 잘하는 애들은 수두룩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영재 반을 뽑는 시험에서 뚝 떨어졌고 엄마는 도시에는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많으니까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는 말았다.



열다섯 살. 그래도 끼적끼적 글을 쓰는 게 재밌었고 나름 잘 써내려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는 건 꺼려졌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피드백을 받은 적도 없었고 극찬을 받은 적도 없었다. 대충 써낸 독후감에 담임선생님은 잘 썼다며 내 글을 학교 신문 한켠에 실어 주셨다.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기뻤다. 몇 주 후 뿌듯한 마음으로 학교 신문을 받아들었지만, 나는 곧 울고 싶었다. 내 글은 초등학생 글짓기 실력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같은 신문 면에 있는 다른 애들의 글은 나를 자괴감에 빠뜨렸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글을 쓰면 항상 부끄러웠다. 내 글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던 한 친구의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글이 좋지만 부끄러워 밖으로 내보이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글쟁이가 되는 걸 포기했다. (나를 자괴감에 빠뜨렸던 그 친구는 지금 등단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또 우울해졌었다.)



열일곱 살. 남들은 공부도 안한다는 배치고사를 죽어라 공부했다. 성적이 꽤 좋았고, 심화반에 들어갔다. 내 실력에는 너무도 과분한 것이었다. 과제도 수업내용도 내가 이해하기에는 힘들고 어려웠다. 그냥 시간 때우기 수업이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심화반에 들어간 나를 자랑스러워하며 나를 법대에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열여덟 살. 나는 이과를 선택했고 엄마는 내가 약대에 가면 되겠다며, 내게 마음의 짐을 가중시켰다. 공부가 싫어졌다. 그래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학교 동아리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다른 친구들이 늦은 시간까지 야자를 하며 공부하면 나는 구석에 숨어 책을 보고, 일기를 썼다. 종이 치면 전교에서 가장 먼저 교문을 나섰고, 집에서도 놀기 바빴다. 성적은 바닥을 쳤고 약대는커녕 대학 문도 못 밟을 것 같았다. 엄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열아홉 살. 그래도 대학은 가봐야 할 것 같아 펜과 책을 다시 손에 쥔 나를 보고 엄마는 내게 말했다. 식품영양학과를 가서 영양사를 하라고. 그래도 그나마 그게 현실적인 것 같아 그렇게 해보겠다고 노력은 했지만, 결국 할 수 없었다. 공대에 다니게 된 나에게 엄마가 그랬다. 너는 이제까지 한 번도 내 계획대로 된 적이 없다고. 나는 청개구리이다. 엄마 말을 듣지 않는 청개구리다.



스물한 살. 엄마는 대학생이 된 동생에게 용돈벌이를 하라며 과외자리를 소개해줬다. 대학생의 여름방학을 만끽하던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나는 왜 그런 거 한번 해준 적 없냐고. 나는 고기집이며 빵집이며 힘들게 알바하며 용돈 버는데 왜 동생은 편하게 돈 벌게 해주냐고. 그러자 엄마가 그랬다.


“너는 성격이 못돼먹어서 애들 못 가르쳐.”


울컥 화가 났다.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부터 학원 강사 자리를 찾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면접 두 번 만에 학원 시간강사 자리를 구한 나는 엄마 앞에서 콧대를 세웠다. 못돼먹은 성격으로 학원 강사 면접에 붙었노라고. 그 놈의 청개구리 심보, 그것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 학원에 발목 잡혀서 선생질을 하고 있다. 개굴개굴.



굴개굴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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