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계절이
태어난 아이가 첫 생일을 맞이하면 갖가지 물건을 앞에 두고 잡게 하며 미래를 점친다. 작은 아이의 손이 힘껏 들어 올린 물건으로 부자가 되겠다, 판사가 되겠구나, 공부를 잘하려나보다 하며 기뻐하는 부모. 나는 돌 사진이 없다. 집 형편이 좋지 않아 그럴듯한 사진을 남기지 못했지만, 간단한 생일 상을 차렸다고 들었다. 나는 돌잡이로 무어를 집었냐고 묻자 엄마는 책꽂이 가장 높은 곳에 꽂힌 천자문 책을 가리켰다. 누렇고 붉은색이 뒤엉켜 낡을 대로 낡은 책 한 권. 그게 내 미래라고 했다. 돌잔치 상에 어떤 게 놓여있었는지 사진이 없으니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 분명히 우울이 놓여 있었을 테고 나는 그것을 집었을 것이다. 낡은 천자문 따위를 잡았을 리 없다. 그렇지 않고야 이렇게 태생적으로 우울할 리 없으니.
한때는 이 우울을 명예로운 훈장처럼 여겼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 조금 더 우월한 사람으로 여겼다. 깊고 진한 우울을 겪지 않고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찾아오는 우울을 떨쳐내려 노력하지 않았던 이유도, 나의 우울을 전시하여 다른 이에게 뽐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0.5단계 정도 더 진화된 인류가 아닐까 싶었다. 우울한 호모 사피엔스. 우울하지 않는 인간은 다음 인간상으로 거듭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우울했다.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해 과거의 상처를 내 손으로 헤집었고 그 안에서 눈물주머니 하나를 찾아냈다. 아주 먼 옛날에 터뜨려야 했을 눈물주머니가 12년이 지난 오늘 또 하나 굴러 나왔다. 날카로운 바늘로 꾹 찔러 누르자 안에 숨어 있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한바탕 엉엉 울었지만, 기분은 영 좋아지지 않았다. 전과 달랐다. 아이처럼 울고 나면 한결 가벼워지던 마음이 오히려 무거워져 앉아있기가 버거웠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다 덮어버리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잘 해낼 자신이 없으니 일을 하기 싫어져 버렸다. 태어난 지 1년 됐던 해에 집어 들었던 우울 주머니가 내가 자란 만큼 커진 모양이다. 나이를 먹으니 우울할 게 늘어났다. 나의 멋진 우울을 보라! 외치며 여기저기 전시하기 힘들 정도로.
으슬으슬 추워진 날씨 때문일까 싶어 올해 처음으로 보일러를 돌렸다. 몸을 돌돌 감았던 담요에 얼굴을 푹 파묻고 작은 집이 훈훈해지길 기다렸다. 우울은 추위에 강하고 더위에 약했다. 빛을 싫어하고 어둡고 습한 곳만 찾아다녔다. 그래, 나오기 싫으면 거기 있으렴. 우울은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먹고 미련를 마시며 쑥쑥 자라났다. 나는 우울의 훌륭한 숙주였다. 태어날 때 내가 우울을 집은 게 아니라 우울이 스스로 몸을 굴려 내 손으로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집이 제법 따뜻해지자 우울은 먹다 남은 내 자존감을 품에 가득 안고 어두운 동굴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니 나는 쓰던 글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잠이 잘 온다. 어디에 머리를 대기만 해도 잠이 쏟아졌다. 암막 커튼 없이도 잘 잤다. 자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잠을 잤다. 일을 할 때도 잠이 나를 괴롭혔다. 마시는 커피양을 늘렸고 부러 몸을 많이 움직였다. 집에서도 앉아있으려고 노력했다. 눕기만 하면 눈이 감겼다. 일곱 살 때 산타 할아버지에게 제발 콩순이 인형을 갖게 해 달라 썼던 편지가 떠올랐다. 눕히면 눈이 감기고 일으키면 눈이 뜨이던 인형. 내가 콩순이 인형이 된 것 같았다. 갖지 못하니 스스로 콩순이 인형이 되려는 걸까. 나는 내가 졸린 이유를 안다. 내 몸이 우울의 신호를 보내는 거였다. 우울해서 못 견디겠으니 얼른 도망치라고, 잠을 자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니 눈을 감으라고.
우울은 수용성이랬나. 일단 좀 씻어내야겠다. 진군하는 잠의 무리를 멈춰 서게 해야겠다. 우울의 계절이 시작됐으니 봄이 오기 전까지 나는 무사하지 못할 거다. 애초에 내 생일상에 우울이 오지 못하게 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나는 덜 진화했거나 혹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들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