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느끼는 방법은 다양하다
“신피질이 뭔지 알아?”
“뭐? 뭐라고?”
“신 피 질.”
몰라, 그게 뭔데?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어서 시간 개념이 없단다. 그래서 오늘, 지금 당장의 행복과 즐거움을 추구한다고.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고. 하다못해 고양이의 대뇌까지 부러워해야 한다니. 세상에는 부러워할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하지 않고 걱정스럽지 않고. 눈 앞의 상활에 집중하면 되는 고양이의 삶.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발달한 대뇌의 겉 부분의 신피질은 뇌의 기능 중에서도 복잡한 능력과 연관되어 있단다. 이 신피질 덕분에 사람은 시간이 흐르는 걸 인지하고 우울할 줄 알게 되고 지루함을 배운다. 진화한 동물일수록 더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우리 곰순이한테는 신피질이 있을까?”
곰순이는 친구네 강아지(청년을 지나 중년을 향해 달려가는 멍멍이인데 아직도 강아지라고 부른다.)이다. 친구 본가에서 키우는 강아지라 실물은 보지 못했지만 SNS를 통해 익히 봐왔기에 낯설지 않다. 가끔 전화 너머로 장난감을 입에 물어 삑삑 소리를 내는 장곰순은 과연 신피질을 가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곰순은 신피질을 가지고 있다. 고양이도 신피질이 없지 않다. 뇌의 겉 부분을 명명하는 신피질이 없다는 건 뇌도 없다는 뜻인데 말도 안 되지 않나. 아무튼 모두들 신피질을 갖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진화했느냐, 뇌를 구성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개는 늑대보다 신피질이 작고 가축화된 소는 야생 소보다 신피질이 작다고 한다. 위험과 위협이 최소화될수록 신피질의 크기가 작다는 거다. 따뜻한 집에서 영양균형을 맞춘 식단을 제공받고 때에 맞춰 산책을 나가는 장곰순의 신피질 또한 무척 작을 것이다.
사람의 신피질은 뇌 전체에서 76%나 차지한다. 인간만큼 시간의 흐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물도 없을 것 같다. 하루하루는 참 더디게 가는데 뒤를 돌아보면 밟고 온 시간이 잔뜩 늘어져 있다.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현재인데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한다. 어쩜, 시간을 이렇게 야무지게 쪼개 놨은지. 과거-현재-미래뿐 아니라 봄-여름-가을-겨울, 1월부터 12월, 일월화수목금토요일, 하루 열두 시간, 한 시간을 또다시 분, 초, 그것도 모자라서 00:00:00:01까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 잘 인식하는 건, 체계적으로 만들어 분류한 시간의 단위가 있어서 아닐까 싶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혹은 낭비하고. 인간의 신피질은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걸까.
뇌가 작다고, 신피질이 인간만큼 진화하지 못했다고 해서 장곰순이 시간을 느끼지 못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털을 흐트러뜨리는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발바닥에 닿는 맨바닥에서 느껴지는 햇살이 변하고, 엄마와 언니의 옷의 길이가 짧아지거나 길어지고, 새로 뜯은 신선한 사료를 알아채고. 분명 무언가 변하는 게 있다. 인간과 달리 그 시기를 정확하게 명명하지 못할 뿐. 장곰순의 시간은 제 언니의 시간과 다르다. 그러니 인간이 ‘이 강아지는 신피질이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밖에.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이 엉망이고 어제에 발목 잡혀 내일로 가지 못하는 것보다 눈앞에 닥친 30초를 고민하는 게 낫겠다 싶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나중에는 오히려 신피질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을까. 번번이 시간과 싸우느니 다 함께 고양이처럼 살면 마음이라도 편하겠지. 참 쓸데없는 것까지 진화하는 거 같다, 인간은.
일단 나는 십분 안에 잠을 잘 거다.
아침에 캡슐커피를 내려 먹을지, 아니면 간단히 인스턴트커피를 타 먹을지 / 냉동밥을 데워 밥을 먹을지, 최근에 산 사과잼을 식빵에 듬뿍 얹어 먹을지 / 바지를 입을지 치마를 입을지 /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서, 지하철 한 번 버스 한 번을 타고, 버스 한 번 타고 쭉 달려가 출근을 할지 / 출근해서는 어딜 먼저 정리할지 등등의 고민은 눈앞에 일이 닥치면 결정하기로 한다. 나는 잠들기 십 분 전까지 내일의 고민거리를 미리 고민하는 신피질 100%의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