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죽음의 기억
외할아버지는 첫 손녀인 나를 퍽 좋아하셨다고 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난 후, 엄마는 나를 외갓집에 맡겼다. 내가 자꾸 동생을 못살게 굴었다는 게 이유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외갓집에 온 다음날, 아무 말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할머니가 하루 온종일 어디 갔나 싶어 동네를 샅샅이 뒤졌지만, 할아버지는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고 먼데까지 가서 고운 비단이불을 한 채 사서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웬 이불이냐고 하니 손녀 줄 이불이라며 싱글싱글 웃으셨다고 한다. 동네 장에서는 이런 좋은 이불이 없으니 멀리까지 나갔다가 돌아온 할아버지는 그 후로도 몇 번이나 사라지셨다. 밥을 안 먹고 우는 손녀가 마음에 걸려 젖을 덜 물어 그런가 보다 싶어 입에 물릴만한 젖병을 사 오고, 달콤하고 부드러운 카스텔라를 사 오고. 당신 자식을 키울 때와는 영 다른 모습이라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린다.
내가 살다 살다, 그 양반이 그렇게 까지 하는 건 처음 봤시야. 늬 할아버지가 너를 엄청 예뻐라 했지.
어렸을 때 찍은 사진들을 훑어보면, 내 얼굴이 유독 화사한 게 있다. 그런 사진들은 열이면 열, 외갓집에서 찍은 것들이다. 까르르 웃으며 장난치고 사촌동생과 동생의 손을 양 쪽에서 잡고 만세 하고. 후줄근한 내복을 입고 뜨거운 아랫목에 자리 잡고 활짝 웃고 있고, 논두렁을 신나게 뛰어다니고도 있다. 볕에 그을려 새까맣게 탄 얼굴로 뭐가 그리도 좋은지. 매번 조심스러워야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봐야 하던 친가와 달리 외가에서는 아무거나 만지고 장난을 쳐도 꾸짖는 사람이 없었다. 내 뒤는 할아버지가 다 봐주고 있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
꽤 크고 나서도 외갓집 가는 걸 좋아했다. 열여섯 겨울, 그 겨울에도 나는 설날을 앞두고 미리 짐을 싸서 혼자 외갓집에 갔다. 외갓집은 시골 촌구석이었다. 편의점도, 마트도 없었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데다가 장을 보려면 하루에 세 번 오는 버스 시간을 맞춰 시내로 나가야 했다. 5일에 한 번 장 서는 날이면 작은 버스 정류장이 복작대고 동네 사람들끼리도 모르는 사람 없는 작은 동네였다. 택시를 타서 ㅇㅇ씨 댁으로 가 달라고 말하면 택시 기사 아저씨들도 네가 ㅇㅇ씨 손녀냐? 물으며 내 짐을 들어 트렁크에 실어 날라줄 정도로 서로 알고 지낼 만큼 가깝기도 했다. 핸드폰도 없는 손녀가 언제나 도착하려나 하고 동네 어귀까지 나와 어슬렁어슬렁 기다리던 게 할아버지였다. 뒷짐을 진 채 시계만 초조하게 보다가 택시가 들어오거나 버스가 오면 할아버지의 얼굴에 반가움이 활짝 피어올랐다.
엄마 눈치 보느라 티비도 많이 못 보지? 예서 실컷 보고 가라.
공부하느라 잠도 많이 못 자지? 푹 자라. 새 이불 꺼내놨다.
너 온대서 고기 좋은 거 떼놨다. 저녁에 구워 먹자.
멋대로 굴어도, 철없이 굴어도,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채널을 아무 데나 돌려도, 해가 높이 떠오를 때까지 늦잠을 자도 혼나지 않고 잔소리를 듣지 않았다. 할아버지랑 같이 하는 건 없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그냥 집에 있는 것 하나로도 좋았던 거다. 그 해 설에는 눈이 많이 왔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펑펑 쏟아졌다. 그 눈이 내가 할아버지와 함께 본 마지막 눈이었다.
***
엄마가 부엌에서 온갖 칼과 가위를 꺼내 식탁에 늘여 놓았다. 갑자기 왜 이걸 다 꺼내냐 물으니 할아버지가 오신단다. 할아버지는 칼을 잘 갈았다. 한 번 할아버지의 손을 탄 칼을 쓰면 다른 칼은 못 쓸 정도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칼을 갈 숯돌과 바나나 두 손을 사서 우리 집에 오셨다. 웬 바나나를 이렇게 많이 사 오셨냐고 엄마가 묻자, 내가 잘 먹던 게 생각나서 사 왔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집에 오시자마자 우리 집에 있는 칼을 모두 갈았다. 작은 과도부터 커다란 식칼까지. 날이 돌에 갈려 싹싹 묵은 때를 벗던 그 봄, 할아버지는 거짓말처럼 돌아가셨다. 큰 딸네 집에 있는 칼을 다 갈아주고, 첫 손녀가 좋아하는 바나나를 가득 사다 주고.
아침 해가 다 뜨기도 전에 엄마가 나를 깨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나와 동생은 시험기간이니 집에 있으라고 했다. 거짓말 같은 할아버지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이제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아 멍하니 학교에 갔다가 1교시 시작 전에 아픈 척 엎어져 하염없이 울었다. 울었던 기억은 있는데 울음을 그친 기억은 없다. 그렇게 계속 울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할아버지가 내게 준 사랑을, 나는 조금도 돌려드리지 못한 거 같아서.
첫 죽음의 기억이다. 누군가 내 곁을 떠난다는 게 그렇게 아픈 일인 줄 몰랐다. 그리고 어디에 털어놓고 실컷 슬퍼할 수 없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실감 나지 않았기에 거짓이길 간절히 바랐던 할아버지의 죽음.
나중에야 할아버지의 장례식 이야기를 들었다. 어디선가 하얀 나비가 집안으로 들어와 아무리 쫓아내도 나가지 않더란다. 팔랑팔랑 사람들의 손짓을 피해 여기저기 앉았다 날아갔다 반복하며 한참을 머물렀다고 한다. 나중에는 차려놓은 술상 앞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단다. 가거라, 나가거라 해도 가만히 있던 나비는 큰삼촌이 향을 피우자 그제야 팔랑팔랑 저 멀리 날아갔다고 했다. 마지막 인사를 다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나비로 나타난 거 같다고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할아버지도, 그 나비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또 눈물이 났다.
살다 보니 온전한 내 편이 없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 모른다. 할아버지는 든든한 내 편이었다. 할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그냥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성적이 잘 나왔어요, 친구랑 싸웠어요 하는 시시콜콜한 몇 마디에 할아버지는 그랬냐? 하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 할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행동으로 나타났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먼 옛날부터 그러했듯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로 마음을 다독이는 것에 서투르니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방법대로 사랑을 표현해줬던 거다. 고운 비단 이불을 어린 나에게 덮어주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그립다.
나는 아직도 하얀 나비를 보면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내가 보고 싶어진 할아버지가, 나를 보려고 멀리에서 날아온 것 같아서. 할아버지가 그립다. 평소에는 무서운 표정을 짓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사르르 녹아내리던 그 웃음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