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사랑

경우의 수만 세거나, 저돌적이었던

by 마음슥슥


넷플릭스에서 사랑에 대한 시리즈를 보았다(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2014).


지나치게 섬세한 감정 묘사와 그것을 글로 담아내려고 하는 모습이 몰입하게 만들었고, 주말 시간을 드라마를 보는데 오롯이 쏟아붓고야 말았다.


드라마를 보면서는 솔직히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시간이 지난 뒤 드라마의 여운을 곱씹으니, 나도 드라마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았음이 보였다.


Q.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Q. 내가 그 사람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진 않았을까?

라는 기본적인 질문에서부터


Q. 대체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는, 그 사랑이란 건 무엇일까?

Q. 그 사람의 꿈을 이루는데 내가 방해가 되진 않을까?

Q. 일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라는 나름 심오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이런 것들을 머릿속에 담아두고 ‘사랑’했던 것 같다.


위 같은 질문들에 대한 적당한 답을 찾고 나를 설득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답은 해변가에 쌓아놓은 모래성처럼 힘 없이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다. 상대가 바뀌거나 상대가 같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답이 바뀌었던 것이다. 적어도 돌이켜 보면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었던 사랑에 대한 답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20대에는 연애나 사랑에 대한 개념이나 내 사고들을 정리하거나 개념화할 능력이 없었기에, 난 눈치를 보거나 막무가내인 사랑을 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상대의 의사를 캐묻지만 나는 지우려 하거나 때론 상대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 의견만 주장했다.


드라마에는 이런 내 모습들이 보였다. 그 고민들의 과정과 감정이 담겨 있었기에, 유치했지만 눈물도 종종 고였고, 배를 잡고 웃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캐릭터 속에 내 모습이 보였기에 그리도 아까운 주말 시간을 10부작이나 되는 드라마를 보는데 쏟은 것 같다.


글을 쓰고 보니 마치 지금은 사랑에 대해 상당히 성숙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그리고 20대의 사랑과 질적으로 달라진 부분도 있다. 적어도 내 마음만큼이나 상대의 마음도 소중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만큼이나 상대의 마음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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