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 주는 따뜻함

비록 시간이 짧더라도

by 마음슥슥


벌초를 갔다.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동생과 상의해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당시 동생은 흔쾌히 내 뜻을 따라주었으며, 같이 해주었다.


요령이 조금 늘어서인지 추석을 거의 앞둔 오늘에서야 벌초를 나섰다. 집 근처 공업사에서 벌초인들을 위해 전시해 둔 예초기 한대를 선택해 차에 실었다. 빌리는 시간은 고작 1~2시간이었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은 매해드는 생각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다지 멀지 않은 벌초 여행(?)의 시간을 채운다. 언제부터인가 동생과의 이런 소소한 시간이 참 반갑고 소중하다. 서로의 나이가 차고, 삶의 모양이 바뀌고, 함께 하는 사람들도 바뀌는 시간의 흐름을 겪어오다 보니 나란히 앉아 TV 프로그램을 벗 삼아 웃던 시간의 그 사람과는 멀어져 버린 기분을 종종 느낀다.


‘어제 자다가 잘 못 됐는지 허리 삐끗했다.’


동생이 다쳤다는 이야기지만 약간 반가웠다. 함께 벌초를 가더라도 예초기는 항상 동생 차지였다. 나더러 늙었다며(나보다 고작 3살 어리면서) 좀처럼 둘러멘 예초기를 내려놓지 않던 그였다. 이번엔 그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허리 괜찮나? 오늘 예초기는 내가 멜게.’


누군지도 정확히 모르는 조상님의 묘 주변을 정리하며 마음이 훈훈했다. 형 값을 하고 있다, 동생이 나 덕분에 편안하다, 가을바람이 살살 불어온다, 생각보다 모기가 많이 없다… 여러 생각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벌초 후 간단히 제를 올린 뒤 먹는 송편과 이름 모를 떡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벌초를 마치고 돌아가며, 조금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서로의 삶을 따라잡다 보니 어느덧 예초기를 빌렸던 공업사 앞에 도착했다. 예초기를 반납하고 집까지 걸어가겠다고 이야기하던 내 이야기를


‘에이 뭐 얼마나 멀다고‘ 라며 가뿐히 무시하며 집 코 앞까지 데려다주는 동생.


그와의 시간 덕분에 이번 주말은 꽤나 훈훈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2호선, 3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