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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Nov 09. 2020

매향으로 장엄한 극락세계(2)

선암사(4~6)

4. 낙안읍성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낙안 땅이 그림처럼 펼쳐지는데, 돌산 아래 금둔사가 있고, 그 비탈진 산허리에 차밭이 있고, 밤나무 과수원이 펼쳐지고, 매실 밭, 단풍나무 밭, 그리고 십여 채 어깨를 맞댄 집들이 계곡물을 끼고 앉았고, 푸르게 늘어선 청죽이 계류 위에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청죽의 끝자락에 깊고 고요한 저수지가 학의 날갯짓 같은 정자와 산그림자를 담고 있고, 그 아래 낙안읍성이 노오란 애기 초가지붕들을 정겹게 끌어안고 있다. 낙안(樂安) 읍성은 고창읍성 해미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인데, 성벽 위에 올서 낙안 땅을 연꽃처럼 에워싼 산자락을 둘러보면 이곳의 지명이 왜 낙안(樂安)인지 얼마나 기막힌 명당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편안하고 즐겁다. 또한 구불구불 골목길에 이어진 노오란 지붕의 초가집들은 너무나 정겨워 말 그대로 시골 외할머니 댁 같은데, 이곳에는  100여 세대가 실재로 살고 있어 여타 민속마을과 다르게 사람 냄새와 온기가 가득하다. 시간이 멈춘 듯하고 아주 오랜 우리의 본 고향으로 돌아온 듯하다.   

 

5. 금둔사    


 금둔 선원이라 새겨진 입석을 따라 구부러진 비탈을 오르면 길 양 옆으로 편백나무 가로수가 조촐한 모습으로 반기는 금둔사 일주문이 보인다.

 해발 667미터의 금전산은 석가세존의 500나한 중 제일정진 금전비구의 이름을 인용하여 이름 지었으며, 산위에 서 있는 각양각색의 바위들은 500나한이 선정에 든 모습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음력 12월에 꽃을 피우는 납월 홍매 6그루를 비롯하여 한국토종매화 100여 그루가 그 진한 매향을 자랑하는 그야말로 매화 사찰이다.

 산비탈을 급박하게 흘러내리는 계류를 가로 질러 세운 높다란 무지개 석교 위에 서면 산기슭을 타고 오르는 시원한 바람이 세속에 찌든 육신을 씻어주고, 석교를 건너 대웅전 마당에 한 발을 디디면 밀물처럼 달려드는 매화향에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그윽하고 알싸하고 달콤하고 청아하고... 산에서 나온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높다란 석축 위에 나지막한 돌담을 두르고 그 석축과 돌담 사이사이에 온통 매화꽃이 만발하여 3월 금둔사는 매화로 치장한 절이요. 매화향으로 피워올린 극락 세계다. 매화 나라, 매화 궁전이다. 좌측 산기슭 노천 법당 안의 금둔사지 석불 입상과 금둔사지 삼층석탑이 신라시대 조성된 이 절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지만.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오직 단아하고 정갈한 매화의 자태와 알싸하고 달콤하고 청아하고.. 무어라 규정할 수 없이 고혹적인 매화향 뿐이다.    

  

6. 승선교와 강선루    


 금둔사를 나와 선암사 쪽으로 다시 돌아가 선암사 삼거리에서 조계산 자락을 향하여 골짜기를 들어가면, 나지막한 야산의 양지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 제법 수량이 풍부한 계곡 물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계곡 건너편 음식점과 여관에서 풍기는 고소한 파전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향기에 침이 고인다.

 매표소를 들어서면서 만나는 정갈한 비포장의 신작로는 계곡을 따라 산허리를 감돌아 나가고, 키 낮은 대 숲에 키 큰 나무들이 울울창창하여 고찰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마땅히 이래야 한다. 맑고 깊은 계곡에 천년 수목이 울창하여 부처님의 향기 같은 산 내음이 짙게 깔려야 한다.

 부도전을 지나 사리탑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며 선암사의 자랑인 홍교가 나타난다. 승선교다. 선녀가 무지개를 타고 오른다는 길고 높다란 반원형의 아치는 다리 긴 미녀처럼 우아하고 시원하고, 널찍한 반석을 나신으로 비추는 계곡물엔 금방이라도 선녀들이 내려와 눈 같은 살갗에 서로 물방울을 끼얹으며 아이 같은 웃음을 연신 까르르 까르르 튕겨 올릴 것만 같다. 

 아기자기한 무더기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굽이는 작은 폭포요, 제법 깊은 수량으로 반원형의 아치를 비추고 있는 것은 선녀탕이다. 이른바 선암사 계곡 중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요, 하여 우측을 흘러내리는 큰 계곡과 좌측을 흘러내리는 작은 개울이 만나는 다리 위에 그림 같은 정자를 세웠다. 강선루다. 

 기울어지는 길의 각도를 교묘하게 잡아 남쪽 뒷기둥과 북쪽 앞기둥은 길 위에 얹고, 남쪽 앞기둥과 북쪽 뒷기둥은 계곡 속에 긴 석주를 세워 올려서, 마치 학 한 마리가 계곡물에 발을 적시다 깜짝 놀라 허공을 향하여 날갯짓 하는 것만 같다. 또한 승선교 다리의 아치 속으로 강선루 팔작지붕의 측면 모서리가 보이도록 배치하여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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