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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Nov 09. 2020

매향으로 장엄한 극락세계(3)

선암사(7~9)

7. 삼인당    


 하늘을 가리는 측백나무와 단풍나무와 참나무 아래로 길은 끊임없는 곡선을 이루며 다시 만난 산자락 우측을 돌아드는데, 그 모퉁이에 ‘삼인당’이라는 연못이 있다. 타원형의 알 모양의 연못 속에 또 알 모양의 섬이 있는데, 주변에는 아름드리 전나무 세 그루가 단풍나무와 함께 연못을 지키고, 연못 안에는 겨울에도 청청한 난잎이 융단처럼 깔린 가운데, 고목의 배롱나무 한그루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깊이가 30센티도 안 되는 연못. 바닥은 낙엽이 쌓이고 나뭇가지들이 어지럽다. 그러나 그 연못에 비치는 풍광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그윽하다. 그 속에는 연못을 에워싼 무수한 나뭇가지들이 섬세하게 자라고 새들이 날고 하늘이 펼치고 구름이 흐른다. 아! 작고 볼품없는 물이 어찌 저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단 말인가. 헤아릴 수 없는 고승의 눈매 같다.

 이 연못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연못 바닥이 진짜인지? 물이 진짜인지? 비치는 나무가 진짜인지? 바라보는 내가 진짜인지? 그 실체가 흔들린다. 장주지몽(莊周之夢)의 고사-‘나는 흥겨이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장주(莊周)임을 조금도 지각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꿈에서 깬 순간 분명히 나는 장주가 되어 있었다. 대체, 장주가 나비 된 꿈을 꾸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처럼, 나와 외물이 다르지 않고 삶과 죽음에 분별됨이 없다. 

 삼인당을 떠난 길은 좌측 산 밑과 우측 언덕 밑을 부드러운 곡선으로 완만하게 오르는데,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 밑엔 나지막한 차나무들이 사철 청청하고 싱싱하다.   

 

8. 대웅전    


 조계산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에 아도화상이 처음 짓고 해천사라 하다가, 신라말 도선국사가 선암사로 불렀다고 전한다. 일주문은 9개의 돌계단을 앞에 둔 맞배지붕으로 화려한 다포 중간에 ‘조계산 선암사(曺鷄山 仙巖寺)’라는 현판을 걸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좌우측으로 다양한 상록수가 싱그런 미소를 던지고, 범종각을 통과하면 무량수각이라 쓰여진 만세루가 있다. 그리고 이 만세루를 돌아들면 대웅전 마당이다. 

 진정한 보살행이 무엇인가를 세속살이를 통해 가슴 서늘하게 보여주었던,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찍은 선암사 마당에는 깨끗하고 단정한 삼층 쌍탑이 숙연하고, 정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의 대웅전은 웅장하고 경건한 자태로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9. 선암매    


 대웅전을 지나 우측 석계 위를 오르면 바야흐로 수백년 된 매화가 우리를 반긴다. 3월의 선암사가 매향으로 은은히 떠오를 때, 절을 들어서서 처음으로 접하는 매화가 바로 이 대웅전 뒤 축대 위의 고매다. 고고한 기품이 넉넉한 가지에 진한 향기로 피어나고, 비로소 우리는 ‘아! 선암사구나!’ 하는 감동에 젖는다.

 그 고매 옆에는 역시 선암사가 자랑하는 수백년 된 연산홍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고, 그 옆으로 철쭉과 왕벚나무가 4월말이면 피를 토하듯 진홍으로 연분홍으로 만개하여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고, 연방 터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로 마당을 붐비게 한다. 이 마당의 축대 위에는 조사전 불조전 팔상전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아담하고 단정하다.

  팔상전 뒤 원통전을 돌아 들어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암매가 600년이 넘는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고, 우측엔 마치 대가집 별당처럼 은밀한 독립된 건물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무우전과 각황전이다. 세월의 무게를 지긋이 펼치며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무우전 마당에는 잔디와 꽃나무가 자연스레 어울리고, 따스한 햇살이 잠든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처럼 부드럽다. 이 무우전과 각황전의 담길을 따라 수령 500년이 넘는 고매 수십 그루가 고아하고 은은한 향기를 드리우고 있어, 4월 선암사는 그야말로 고전으로 향하는 길목이요, 향기로 그려내는 산수화의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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