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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Dec 16. 2020

장회나루 이야기

   단양은 이황의 땅이다. 그리고 두향의 땅이다. 

 퇴계선생은 24살에 처음 과거에 응시한 이후 세 번이나 고배를 마시다가 27세에 경상도 향시에서 생원 2등으로 합격하고 28세 진사시에 2등 그리고 34세에 문과 초시 2등으로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후 파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주로 대궐에서 학문에 관계된 직책에 근무했었는데, 워낙 고향으로 돌아가 학문에 열중하고 싶은 열망이 강하여 외직(外職)을 신청하고, 그 결과 처음으로 대궐 밖으로 나온 것이 48세에 단양군수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단양에서 만난 인연이 30세 연하인 18살의 관기 두향이었다. 두향은 단양 두항마을에서 태어나 관기가 되었는데 시에 능하고 거문고를 잘 타고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분을 잘 길렀다고 한다. 46세에 둘째 부인마저 죽고 단양으로 부임한 후 둘째 아들마저 잃은 이황을 시와 음률과 풍류로 위로하며, 몸과 마음을 함께 한, 선생 생애에 유일한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사랑이 바로 두향이었다.

 둘이 주로 풍류를 즐긴 곳이 구담 옆 강선대인데, 지금은 충주호로 수몰되어 볼 수가 없다. 이황이 열 달 남짓 짧은 임기를 마치고 풍기군수가 되어 떠나간 후, 이황은 차기 군수에게 부탁하여 두향을 관기에서 빼내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향은 이황과 함께 한 추억의 강선대 옆에 초막을 짓고 수절하다가, 이황이 죽자 나흘을 꼬박 걸어서 안동까지 찾아가 먼발치에서 절을 올린 후, 돌아와 푸른 남한강 강물 속으로 이황의 몸을 따라갔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애처로워 초막 근처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지금은 충주호 수몰로 더 위로 이장하여 장회나루 맞은 편 양지바른 산자락에 모셔져 있다. 

 선생이 돌아기기 전 마지막 말

“ 저 매화분에 물 주어라!” 

 라고 말한 매화 화분이 바로 이황이 단양을 떠나갈 때, 두향이 애지중지 기르다가 전해 준 두향의 매화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황은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두향을 애지중지 품고 있었던 것이리라. 아무튼 퇴계 후손들은 두향의 정절을 흠모하여 대대로 무덤을 찾아 술을 부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단양 기생들이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 주었는데, 지금은 단양문화보존회에서 해마다 10월이면 대대적으로 장회나루 두향 스토리공원에서 ‘두향제’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퇴계선생은 이 경치 수려한 단양 풍광에 팔경을 정하였는데, 도담삼봉, 석문,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구담봉, 옥순봉이다. 그런데 그 당시 옥순봉은 단양 땅이 아닌 청풍 땅이어서 청풍 부사를 찾아가 옥순봉이 있는 괴곡리를 단양으로 떼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는데, 안타깝게도 거절당하고 돌아오면서  너무나 아쉬워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씨를 써 놓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신선의 땅 단양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훗날 청풍 부사가 이를 보고 퇴계의 열망에 감동하여 결국 괴곡리를 단양으로 양도해 주어서 단양팔경이 완성되고, 이 옥순봉을 팔경에 넣어달라고 간청한 사람이 두향이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단양은 두향의 땅이다. 그리고 한강의 강줄기를 따라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 바로 이 단양 땅 옥순봉과 구담봉 일대의 풍광이라고 한다. 두향의 매끈한 몸매와 살결을 닮은 화강암이 북으로는 가은산 자락 새봉 둥지봉으로 솟아 있고, 남으로는 날아갈 듯한 제비봉의 날갯짓 아래 옥순봉과 구담봉이 그 화려하고 매혹적인 자태를 강물 속에 비추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담겨 있고 아름다운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의 이야기처럼... 하여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풍광을 찾을 줄 알고 아름다운 사연을 만들어 낼 줄 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사연을 영원히 아름답게 간직할 줄도 안다. 

옥순봉을 편입하여 팔경을 완성하니 

위로는 도담 석문이요 옆으로는 사인암과 상·중·하선암이요 

아래로는 구담과 옥순봉이네

천년 거북 반영 뜨는 강선대에 자리 펴고 

님의 싯귀 구절 마다 거문고 선율 넣어 

선경에서 맺은 인연 춤사위로 펼칩니다. 

높디높은 님의 학문은 붙잡을 길 아득하니 향내 담긴 님의 숨결 죽음으로 잡으리다.

치마 벗어 휘장 두르고 머리 풀어 금침을 펴니 

삼십년 먼 강상이 한몸 되여 녹아 나네 

하늘에는 학이 날고 물속에는 어별이 춤을 추고 

강물소리 바람소리 봄 햇살에 어지럽네

한번 맺은 인연과 정은 돌이킬 수 없으니 어느 봄날

그대가 매향되어 천상으로 승천하는 날 아아, 아릿하여라 

아득하여라 저는 한순간도 주저 없이 구담에 몸을 던져 

님이여! 꿈에서도 잊지 못한 나의 님이여!

그대가 풀어준 치맛자락에 얼굴을 묻고

님이여! 죽어서도 놓지 못할 나의 님이여!

옥 같은 그대 품속에서 꽃잎 되어 부서지이다.    

    

- 두향의 서(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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