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진욱 Dec 19. 2020

멧돼지와의 먹거리 전쟁



 가을이라서 산에 버섯을 따러 갔다. 덜어 버리는 계절. 가벼워지는 산은 무수한 먹거리를 남기고 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는 죽으면 무엇이 흔적일까? ‘ 생각도 해 보고,

 산 속 나무들은 가을이면 열매를 떨구는데, 그 대부분이 다른 생명의 먹이가 된다. 하나의 생명이 죽어 무언가를 남기고, 그것이 또 다른 생명들의 먹이가 되는 순환작용. 이것이 자연 법칙 속에 흐르는 가장 절대적 진리다.

몇 해 전만해도 산에서 최 강자는 인간이었다. 아무리 깊은 산속에서도 인간이 동물을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사람 기척만 있어도 뭇 짐승들은 숨 죽이다 도망하기 바빴다. 나도 산나물이나 버섯을 찾다가 몇 번 멧돼지들과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멧돼지들은 먼저 도망쳤다. 황소만한 멧돼지가 – 정말 저놈이 몸을 움직일 수 있을까 의심할 만큼 뚱뚱하고 큰- 놀랍게 빠른 속도로 ‘두두두’ 소리를 내며 눈깜짝할 새 산비탈을 타넘어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산골짝을 헤집어 버섯이나 더덕을 찾다 보면, 멧돼지들의 위협이 공포적이다.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경고나 하듯이 꽥꽥거리며 비켜서질 않는다. 멧돼지가 인간을 피하던 상황이 인간이 멧돼지를 무서워하며 피해가야 하는 상황으로 역전된 것이다. 이제는 나도 해마다 뉴스에 등장하는 멧돼지 공격 사고가 떠올라, 산에서 멧돼지 흔적만 보아도 등줄기가 선득해 진다. 

 멧돼지를 집돼지처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순하지도 느리지도 않다. 아주 험한 지형에서도 멧돼지는 정말 빠르고 수영도 잘 한다. 멧돼지가 오를 수 없는 큰 나무나 바위 위로 피하면 된다지만, 멧돼지가 공격할 마음만 먹으며 산에서 인간이 도망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너무 빠르기 때문이다. 눈깜짝할 새 달려들어 허벅지를 물어버린다. 

 왜 이렇게 상황이 바뀌었을까? 전문가들은 개체수의 급증으로 영역과 먹이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해 전만해도 개체수가 많지 않아서 차지하는 영역도 넓었고 먹이도 충분했는데, 최근 개체수의 급증으로 영역과 먹이가 턱없이 부족하게 된 까닭에 필사적으로 영역과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 인간까지 공격하게 된 것이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생존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그 생존의 가장 기본이 식량과 경제생활안정이다. 그래서 더 가족중심적이고 나아가 극단적 개인중심으로 변해 가는 것이 아닐까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더불어 발달한 농업기술의 혁신은 비료, 농약, 종자개량, 농업기계발명 등으로 획기적인 식량 증산을 이루었고, 지금까지는 지구 전체 인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식량증가율이 인구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여, 몇 년 후면 식량소비인구에 비해 식량생산량이 현저히 부족해서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은 상황이 더 어렵다. 하루 빨리 이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우리의 농업정책은 그렇지 못하다. 농민 인구가 줄어들어 정치인들의 관심 밖으로 내동댕이 당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다른 농업국과 비교했을 때, 우리의 생산가는 너무 높고, 생산가에 비해 생산물의 가격이 너무 낮아서, 기계를 구비하고 시설을 갖추어 현대화된 농업경영을 하지 않는 한, 절대 적자를 면할 수가 없다. 구조적으로 외국의 싼 농산물을 자유경쟁으로는 결코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우리 농민들은 희망을 잃고, 손을 떼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개인이건 국가건 제 스스로 먹거리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불안한 일이다. 기본적인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지구인구에 비해 지구곡물생산량이 부족하여 먹거리가 심각해지면, 인간 역시 지금 산속의 멧돼지들처럼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자신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피 튀는 싸움을 해야만 한다. 

 아니 벌써 전쟁은 시작되었다. 우리를 에워싼 미국, 일본, 중국의 지도자들을 보라. 어떤 사람이 지도자로 당선되는가? 오직 자국의 이익을 위해, 자국의 먹거리를 위해 동물처럼 싸워줄 사람을 적극 응원하고 있지 않은가. 식량부족이 현실화되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세계는 더욱 비정해지고 치열해질 것이고, 더 물질만능 금전우선주의로 흘러갈 것이다. 생명체에 있어서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그림 같은 가을 산에서 꽥꽥거리는 멧돼지 위협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들의 영역을 피해 조심조심 발을 옮기며, 바야흐로 불어 닥칠 인간들의 먹거리 전쟁을 예감한다. 

작가의 이전글 1. 문화답사의 중요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