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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진욱 Apr 13. 2023

물과 사람

 나는 요리를 잘 못하는 편인데, 굳이 자신있는 것을 말하라고 하면 백숙과 민물매운탕이다.  왜냐하면 이 둘은 그 승패가 요리 솜씨 보다는 들어가는 재료에 있기 때문이다. 

 닭백숙은 산에서 채취한 자연산 약초들을 그냥 넣고 끓여주기만 하면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고기와 약성 높고 구수한 국물이 우러나기 때문이며, 민물매운탕의 핵심 역시 물고기의 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물매운탕을 끓일 때, 민물고기, 파, 마늘, 청양고추, 고추장 5가지 재료 외에 다른 것은 일체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원하고 담백하며 달착지근한 물고기의 고유한 맛을 잘 살리려면 다른 재료들은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물고기만은 반드시 최상급의 물고기를 쓴다.

 이때 물고기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 물의 질이다. 즉 얼마나 깨끗한 물에서 사는 고기냐 하는 것이다. 도시의 하천에서 잡은 피라미와 시골 농수로에서 잡은 피라미와 깊은 산 계곡에서 잡은 피라미는 그 맛이 천양지차다. 물이 더러우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다양하게 넣고 끓여도 매운탕 맛이 더럽다. 비린내가 심하고 살이 흐물거린다. 그러나 깊은 계곡물 (국립공원에서 물고기를 잡으면 절대 안되지만) 예를 들어 백담계곡이나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서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이면 살은 찰지고 국물은 담백하며 깔끔하다. 너무나 달고 시원하다.

 피라미라고 하는 물고기의 종류가 매운탕 맛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가 어떤 물에서 살고 있느냐가 매운탕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흑인이냐 백인이냐? 남자냐 여자냐? 잘생겼냐? 못 생겼냐?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냐이다. 속고 속이는 탐욕으로 얼룩진 투기판 정치판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청정하고 깨끗한 예술과 학문 그리고 종교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향기와 맛이 다르다.

 즉, 노는 물이 다른 것이 사람의 질을 좌우하는 것이다.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아가는 물도 물질적 정신적으로 깨끗해야 한다. 깨끗하게 살아야 담백하고 깔끔하며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 

 이때, 깨끗함의 핵심은 흐른다는 것이다. 물도 인간도 흘러야 깨끗해진다. 고인 물은 무조건 썩는다. 깊은 산 계곡물이 깨끗한 이유는 오염원이 없기도 하지만, 빨리 흐르기 때문이다. 깊은 산 계곡물도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으면 금새 썩는다. 물도 사람도 부서지고 깨어지며 빠르게 흘러야 깨끗해지는 것이다.

 폭포로 급류로 부서지고 깨어지며 스스로를 늘 정화하던 물이 인간의 세상을 만나면 느려진다. 인간의 탐욕에 갇히고 인간을 부양하느라 지치고 더럽혀지는 것이다. 인간도 탐욕에 갖히고 인간을 부양하느라 지치면 더러워진다. 

 이 더럽혀진 물을 자연적으로 정화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부딪치고 깨어지도록 빠르게 흘려보내면 된다. 인간 역시 구속됨 없이, 욕심 없이, 갇힘 없이, 추종없이 빠르게 흐르는 사람만이 깨끗해진다. 돈을 지키고, 지식을 고수하고, 신념을 고집하는 순간, 인간은 고집 센 늙은이, 이른바 냄새 나는 꼰데가 되는 것이다.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포장도로처럼 굳어지지 말고 배척하지 말고, 낙엽처럼 흙처럼 긍정적으로 개방적으로 편견없이 받아들이고 흡수하여 스스로를 정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숲처럼 바람처럼 계곡물처럼 늘 청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빠르게 흘러가자. 조금도 정체하지 말고 머물지 말고 늘 새로운 곳을 향하여 달려가야 싱싱한 사람이 된다. 금강산 만폭동에서 잡아 끓인 민물매운탕처럼 담백하고 깔끔하며, 달고 향기로운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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