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멜 혜은 Oct 30. 2020

마흔두 살 나를 그리다

엄마의 자리


  

전업주부가 육아와 가사가 아닌 다른 꿈을 꾼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너는 그래야 해. 이것이 너의 역할이고 의무고 책임이야.’


 이렇게 말할 자격이 과연 그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투고를 앞둔 어느 날, 나는 출간 기획서를 수정한다는 사심을 품고 시댁으로 향했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불편한 마음만 가득 안은 채 말이다.  

    

사건이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1년 넘게 지속되는 며느리의 변화가 맘에 걸리셨나 보다. 시댁에 와서도 새벽에 일어나 노트북을 두드렸으니,  당신의 며느리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늘 마음이 쓰이셨던 것이다. 아버님은 우리 부부를 앉혀 놓고 걱정스러운 잔소리를 잔뜩 쏟아 놓으셨다.


"사람은 모름지기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 네가 할 일은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는 일이다.

네 역할에 소홀할까 봐 염려가 되는구나."


순간 나는 무척 서운했다. 내 마음을 공감받지 못해서 서운했다. 나는 위로받고 싶었고 격려받고 싶었던 거다.


'누구 도움 없이 혼자서 아이 둘을 이렇게 잘 키워서 고맙다.'

'살림하랴, 아이들 돌보랴 바쁜 와중에도 너 자신을 돌보고 가꾸느라 애쓰는 모습이 참 멋지다.'


내가 식구들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말이었을까? 나의 이중생활로 챙김 받지 못하는 식구들이 생길 까 봐 걱정하시는 아버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보상받고 싶은 심리 아니었다. 누군가 칭찬해 주길 바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육아와 가사에 방해가 되니 그만두라는 아버님 말씀은 내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나란 사람의 자리는 식구들을 먼저 보필하고 챙겨야만 하는 자리란 말인가? ‘엄마’의 자리는 그런 자리란 말인가?


 그렇다면 ‘엄마’이기 전, ‘아내’이기 전 ‘나’는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이런 마음이 불쑥 올라오자 나는 반항이 하고 싶어 졌다. ‘ 아. 이러다가 페미니스트 되는 것은 한순간이겠는 걸’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나도 모르게 양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느새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너희와 함께 하는 시간

‘보여줘야겠어, 육아도 자기 계발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나는 야무지게 해 낼 거야.‘

   

나는 지금 내 자리가 좋다.


‘엄마’의 자리를 사랑하고

S 씨의 아내인 지금이 좋다.

‘엄마’ 여서 해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아이들 덕분에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졌다.    

40 넘게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해야 행복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파고들지 못했다.

       

글을 쓰면서 나를 탐구한다. 글이라는 도구 덕분에 ‘나’란 사람을 이제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내가 가진 생각을 알아차리고, 하나씩 나에 대해 깨우치고 있는 중이다.


살기 위해 밥을 먹듯이 나를 살리기 위해 글을 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이유이다. 조금씩 나를 알아가고 세상을 깨우치는 이 시간이 내겐 힐링의 타임이요 생명수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반의반도 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나' 만의 시간


나는 나를 제대로 쓰고 싶다.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쓰임을 제대로 찾아 쓰고 싶다.

내가 나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나의 쓰임을 찾아가는 중이고 그걸 발견해 가는 과정에 있다.    

 

‘엄마’가 되며 비로소 ‘책임’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나 자신뿐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엄마로서 나의 책임과 역할은 자녀의 올바른 독립을 돕는 것이다.  두 아이들이 자신의 발로 이 세상에 우뚝 서 길 바란다.     


나는 아이들이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세상이 일러주는 기준이 아닌 자신 그대로가 되길 바란다. 엄마가 몸소 걷고 체험한 길. 넘어지고 까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 세상이 정한 한계에 가두지 않고 확장해 가는 법. 나는 그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내가 나를 찾는 과정은 나의 두 아이들이 자신의 쓰임에 대해 생각하고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일만이 엄마 역할의 전부가 아님을 이제야 알았다.

멈출 수가 없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나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    


엄마가 되어 누군가의 삶을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 나는 아이뿐 아니라 또 한 사람, 나 자신도 함께 키우는 중이다.             

이전 01화 엄마의 이중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