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나는 글을 쓴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알람은 나의 생각들이다.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 마치 내게 속삭이듯이 생각들이 나를 깨운다. 부스스 일어나 침실을 나온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하면 어김없이 새벽 5시다. 노트북을 켜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인다. 그 사이에 노트북은 부팅이 완료된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세요. 당신을 어디든 데려다 드립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노트북 화면은 알라딘 요술램프의 지니 같다.
뜨거운 물과 미지근한 물을 7:3 비율로 따라 머그잔에 한 가득 부어 들고서 자리에 앉는다. 내가 글을 쓰는 자리는 따로 있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오늘은 그 옆 자리 하늘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이 자리에 앉으면 오늘은 좀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까? 오늘은 색다른 시도(?)를 해본다.)
내가 글 쓰는 자리는 주방 옆 식당이다. 식탁 맨 끄트머리 하얀 의자. 나는 매일 이 자리에 앉아 글을 쓴다. 적당히 푹신한 쿠션이 있는 하얀 의자에 두 발을 모두 올리고 양반다리로 앉는다. 방금 제조한 음양수를 꿀꺽 넘기고는 나를 깨운 생각에 시동을 건다.
‘ 자 이제 시작해 볼까?’
나를 흔들어 깨운 글감들은 마중물이 되어 생각의 물고를 터준다. 마치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 글자도 놓치지 받아 적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생각에 집중한다. 그렇게 몰입하여 글을 쓰다보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 중 가장 큰 기쁨은 '깨달음'과 '발견'이다.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온전히 집중해 글을 써내려간다. 한창 글쓰기에 열중인 '나'는 내 마음을 열어 보이는 '화자'인 동시에 '청자'이다.
글이 잘 써질 때는 리액션 또한 강렬하다. ‘아~’ 이제야 알겠다는 외마디 탄식, ‘맞네. 그러네. 진짜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알아챈 공감의 표현, 또 어떤 날은 뜨거운 눈물이 또 어떤 날은 두근두근 설렘으로 반짝 반짝 눈을 빛내며 글을 쓰곤 한다.
누군가 이렇게 나의 말에 귀 기울이고 열렬한 반응을 해준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니 남편과 콩닥콩닥 연애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봐도 또 봐도 보고 싶고 물어도 또 물어도 궁금한 너의 이야기,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지만 자꾸만 그립고 보고 싶었던 그때 그 시절. 글을 쓰는 내 마음이 꼭 그렇다. 사랑에 빠진 연인 같다. 하지만 이번 상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매일 봐도 보고 싶고,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가 앉아 살고 싶다. 연애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그런 감정을 글을 쓰며 내 자신에게 느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의 모든 것들이 궁금했다. 나는 내가 미치도록 궁금하고 그리웠었다.
“날 찾고 싶어.”
라는 외침으로 시작된 마흔 앓이가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너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이리 와, 날 따라와.’ 마음이 손짓하는 대로 따라가 보니 글쓰기가 내 삶에 들어왔다.
글쓰는 내 자리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나는 오전 5시~7시까지 글을 쓰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7시가 되면 나는 하얀 의자에서 내려온다.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리고 아이들 원에 가져갈 식판을 챙겨 넣고 아침상을 준비한다.
이른 아침 글쓰기는 나 자신과의 데이트 시간이다. 짧고 강렬하게 사랑을 나누고 사랑의 힘으로 또 하루를 산다. 마흔 한 살 어느 날 찾아온 물음, ‘나를 찾고 싶어.’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던진 물음에 대한 답으로 글쓰기란 도구를 찾아낸 내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하다. 나는 이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새벽에 글 쓰고 아침엔 일상으로 돌아가는 신데렐라 유리구두의 마법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