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어린이집 등원과 함께 만 3년 만에 홀몸 외출이 가능해졌다. 첫째 때는 몰랐다. 홀몸 자유의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해 그 시간을 허투루 보냈다.
첫째는 24개월이 채 못 되어서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다. 입소 사유는 '동생이 태어나기 전 적응기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첫째에게도 나에게도 나름의 적응기가 필요했다. 세 가족에서 넷이 되기 위한 준비가 '기관 적응'이었다.
당시 나에겐 아이 둘 '독박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독점 육아라는 고상한 말로는 내 기분을 설명하지 못해 독박 육아라 쓴다) 친정도 시댁 도움도 없이 아이 키우는 사람이 나뿐이겠냐만은 친정엄마가 없는 까닭에 그 서러움은 더욱 컸다. 어쩜 내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 아닌 서러움이었은지도 모르겠다.
서러움과 두려움이 뒤범벅이 된 채로 선택한 어린이집 행이 홀 가불 할 리 없다. 아이를 원에 들여놓고 뒤돌아 설 때마다 내 마음은 미안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열심히 집안일을 했다. 마치 집안일이 내가 해야 할 전부인 것처럼 열심히 살림에 집중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둘째와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숲 육아’라는 육아공동체를 결성해 아이와 함께 자연에서 충분히 뒹굴고 함께 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되었다. 엄마도 아이도 사회에 한 발 내딛을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다. 무엇에 쫒기 듯 결정한 첫째 때와는 달랐다. 시행착오를 겪은 덕택일까? 모든 계획 안에 아이와 내가 있었다.
찬이 보낼 어린이집을 수소문하고 다행히 보내고 싶은 기관이 결정되었다. 예전부터 관심 있었던 발도로프 기관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빈 시간, 내게 주어진 자유시간을 알차게 보낼 계획을 짰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무료 강의부터 찾아보았다. 첫째가 도서관 영어 프로그램을 아주 재미있게 하고 있던 터라 나에게 맞는 무료 강의를 도서관에서 찾았다. 그렇게 찾은 것이 하브루타 부모교육이라는 수업이었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나 역시 제대로 배우면 써먹을 것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요일의 계획을 세웠다. 이번 이번에는 나의 시간을 알차게 꽉 채우고 싶었다.
‘올해 안에 꼭 무엇이 되고야 말겠어.’ 그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는 굳은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