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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혜은 Nov 01. 2020

어느새 또 다른 문 앞에

작가라는 타이틀

   

3월 28일 처음으로 출간 기획서라는 것을 써봤다. 정신없이 토해내기만 한 글들이 출간 기획서라는 형식을 갖추자 또 다른 것들이 보인다. 이제야 내 글의 방향이 조금씩 보인다.

‘자 그럼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니?‘ ’네가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뭐니?’라고 묻는 것 같았다.

처음 글을 쓴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나 자신 외에 누구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 이 글이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랐다. 그 마음이 피어올랐다.    


투고 날짜를 석 달 뒤 6월 24일로 잡고 내 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첫 기획서를 쓴 날로부터 3개월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한 줄도 수정하지 못했다. 수없이 질문이 쏟아졌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니? ”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거슬러 가야 했다. 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끊임없이 나 자신과 다시 대화해야 했다. 나를 다시 찾아야 했다. 그래야만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찾아야 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있어.’   

 


투고를 삼일 앞두고 시댁에 방문한 날, 시아버지 앞에서 나의 꿈이 완전히 짓밟혔다.


"넌 ‘전업주부야.’ 전업주부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돌보는 일이다."

아버님께서 하신 '전업주부’ 란 말이 뇌리에 박혔다. 나는 내 자리를 좋아했다. 아이들을 원하는 때 필요한 때 곁에 있어줄 수 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했다. 이것이 전업맘의 특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님의 말속의 ‘전업’은 전혀 뉘앙스가 달랐다. 거부감이 일었다. 내가 기꺼이 사랑하고 감사했던 내 자리를 하찮게 여기는 표현으로 느껴졌다.   

  

‘나에게 전업주부 콤플렉스가 있었구나.’   

어쩜 전업주부로 살아온 10년 동안 나는 나의 이 자리를 좋아하면서도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일종의 자격지심일까? 나를 타격하는 전업주부라는 그 단어가 너무 싫었다. 그날 저녁 나는 산산이 부서졌었다. 투고를 위한 기획서 수정을 시댁에 머무는 동안 완벽히 끝내려는 야무진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암울한 이틀을 시댁에서 보내고 남편과 냉전 상태로 차에 올랐다.


내일이면 남편 없는 평일이 시작될 텐데... 암담했다.  일주일에 딱 한 번 학교 가는 첫째와 완전한 한 몸이었다. 기획서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제대로 고칠 수 있을까? 그때까지 확신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너 투고 날이 언제야? 내일모레라고? 그럼 당장 우리 집으로 와. 애들은 나한테 맡기고 너는 글만 써.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 네가 해야 할 일만 집중해. 어서 와.”    




<투고 이틀 전 6.22 d-day 2>     

짐을 꾸리고 아이들을 챙겨서 차에 올랐다. 분당에서 일산까지 비장한 각오를 하며 달린다. 그 길이 어떤 길인지 가면서도 몰랐다. 내 삶이 바뀔 그런 순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글 쓸 곳이 필요했다.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는데 사촌동생은 그걸 내게 내주었다. 붙박이처럼 꼼짝 않고 앉아 글만 썼다. 마감 일자가 코앞이니 고민했던 내용들이 드디어 활자가 되어 써진다. 막힘없이 풀어갔다.   

 

‘내 글을 읽는 독자는 어떤 사람일까?’ , ‘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것 두 개만 생각하며 그동안 해오던 고민에 대한 답을 풀 듯이 써 내려갔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들은 모두 잠들었다. 사촌동생과 마주 앉아 소주 한잔을 놓고 내 책의 독자를 상상한다.

“그래 이거야.” 나는 독자를 분명히 설정할 수 있었다.    


써놓고 보니 독자는 나 자신이었다. 과거의 나 자신. 몰라서 무지해서 겪었던 돈에 대한 실수들, 과거 나의 모습이 바로 독자였다.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시 독자에게도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06.23 / d-1>    


am 09:00  오픈

pm 10:00 마감    


커피숍에 첫 손님으로 와서 마지막 손님으로 나간다.

이틀 동안 하루 14시간 이상씩 한 자리에 앉아 총 28시간이 넘게 글만 썼다. 점심을 먹고 와서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몰입한 시간 덕에 출간 기획서가 제법 마음에 들게 나왔다. 투고에 집중할 수 있게 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준 사촌동생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목차를 다듬고, 대표 꼭지를 수정하고 다듬고, 프롤로그를 다시 가다듬고 몰입에 또 몰입 마지막 기획서 검토가 끝났다. 후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드니 결과야 어떻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고 전까지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이 나를 괴롭혔나 보다. 좀 더 멋지게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 말이다.     


“내가 가진 것 이상도 이하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투고 전에 나 자신이 작고 초라해 보여 슬럼프가 왔었다. 에고의 목소리와 한참을 싸웠다. 그때 나 이전 출간 계약을 한 지인의 말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에 집중하자.’ ‘나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내 이야기에 집중하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이야기에 자신을 갖다 놓고 스스로 자책하고 비교하지 말 것! ’

을 당부하며 나에 집중하기로 한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는 수도 없이 자기 자신과 싸우고 갈등한다.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만이 책을 쓸 수 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28시간 몰입해 출간 기획서를 종결하고 3달 내내 책의 방향과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작년 10월부터 8개월을 나는 글쓰기에 폭 빠져 있었다.

나는 충분히 즐겼고, 충분히 괴로웠으며,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은 다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마음이 다 비워졌다.     




<06.24 , D-day>


8시 40분 첫 전화가 왔다. 원고에 대한 칭찬과 주제에 대한 공감 함께 하고 싶다는 전화였다.

어안이 벙벙했다. '연락이 오는구나.'  연이어 전화벨이 울렸다.


 "구혜은 작가님이시죠?"

나는 전송 버튼 하나를 눌렀을 뿐인데,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져 있었다. 마법을 부린 듯했다. 난 엄마의 자리가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생각했는데 나를 채울 무언가 필요했나 보다. 기분이 묘했다.    


여러 출판사들의 피드백은 엄청난 배움이었다. 책을 보는 시선에 대해 배우고 출판사의 규모에 따라 관점이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또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것들을 콕 집어서 어떻게 해결하실 거냐고 묻는 곳도 있었다.

어떤 곳은, 내가 느끼고 생각한 기획 의도를 마치 내 안에 들어와 앉은 것처럼 꿰뚫고 있어서 신기했다.   

 

출판사를 정하고, 지금은 책을 집필 중이다. 글을 쓰면서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책을 준비하면서 나는 나에 대해 알아간다. 또 내 안에 미운 오리 새끼와 수도 없이 싸우는 중이다. 여전히 두렵다.


투고 후 출판사 러브콜을 받으면 세상이 달라질 줄 알았다. 끝인 줄 알았던 그곳이 다다르고 보니 끝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한 나는 계속 점을 찍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만 지치지 않는다. 이 모든 과정이 그저 좋아서 시작된 일이었다. 글쓰기가 좋아서 그저 그게 좋아서 매일 새벽에 일어날 수 있었고 매일 마르고 닳도록 쓸 수 있었다. 아직 내가 넘어야 할 산이 분명 많이 남았다.


나는 계속 진화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얻은 깨달음을 나누며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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