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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멜 혜은 Dec 08. 2019

이웃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헤어짐은 또 다른 시작

 집을 산다면 분당에 살고 싶어.” 아무 연고도 없는 분당에 자리 잡은 이유는 남편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었다. 나는 친정 식구들이 있는 목동에 남기를 원했지만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남편이 이렇게 무언가를 강력히 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초반, 강남으로 출퇴근했던 우리 부부는 분당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이것이 분당과의 첫 인연이었다. 2년 전세계약이 만료되고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목동으로 이사했다. 목동 집 전세가 만기 될 때쯤, 이제는 우리가 집을 사야 할 때라고 남편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집을 산다면 분당에 가서 살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다. 남편의 의지가 너무나 확고했기에 그 의지를 꺽지 못한 채 나는 분당댁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앞집 이웃 덕분이었다. 79년생 엄마와 13년생 첫째, 16년 생 둘째까지 우리들은 모두 친구였다. 앞집 엄마와 나는 둘째를 거의 동시에 임신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우리는 열흘 차이로 둘째를 출산했다. 둘째의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함께 하며 우리는 서로를 운명이라 믿게 되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앞집 대문과 우리 집 대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아이들은 맨발로 두 집을 오가며 지냈다. 

 눈곱도 안 뗀 얼굴로 모닝커피를 마셨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복도를 오가며 저녁을 함께 지어먹었다. 집안 구석구석 서로의 집이 내 집처럼 익숙했다. 밥하기 싫은 날, 혼자 먹기 싫은 날, 육아가 너무 힘든 날, 수다 떨고 싶은 날... 이런 날은 앞집 친구에게 연락했다. 

 “오늘 우리 집에서 저녁 먹지 않을래?” 아이들은 알아서 놀았고, 친구와 수다 떨며 먹는 밥은 찬이 없어도 꿀맛이었다.

 “난 너랑 먹으면 밥이 너무 맛있더라.” 

우리는 육아 동지이자, 가까운 이웃 그리고 둘도 없는 친구였다.

 친구를 초대하면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어수선한 집안을 정돈하고, 저녁거리를 고민한다.  하지만 앞집 친구와는 달랐다. 할 일이 남아 있으면 수다를 떨며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면 그만이었다.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아도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우리는 만날 수 있었고, 서로를 손님으로 여기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서로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함께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런 이웃이 지난주 이사를 갔다. 마지막 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일상이었던 우리들에겐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이웃으로는 이 날이 마지막 저녁이었다.

10.8일 그날이 왔다. 이웃집 이삿날이 온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이삿짐을 싸는 눈치였다. 아침이라도 챙겨주려 나가니 벌써 아이들 데리고 식사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서로에게 최대한 불편을 주지 말자는 생각을 가져왔던 우리 둘의 습관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아이들 데리고 나갔을 앞집 친구를 생각하니 미안했다. 내가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줄걸 그랬다.

 “이사 가는 날 아이들 아침 좀 챙겨주라.” 이 말을 꺼내지 못했을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 미안했다. 

 친구에게 아침 먹자고 전화를 했다. 아이들 4명이 여느 때와 같이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다. 앞집에 더 이상 이들이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등원할 준비를 마쳤다.  

 “잘 자, 내일 봐.”라는 인사 대신 “ 그동안 즐거웠어. 이사 가서도 우리 자주 만나자.”라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수연아,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너 덕분에 정말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이웃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고맙다. 그리고 너무 아쉽다."  앞집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하며 서로를 안아주었다. 




 앞집이 이사 가던 그날 저녁, 집안이 텅 빈 것 같이 고요하고 쓸쓸하다. 어쩜 진정한 이웃집 친구와의 인연은 이제부터 시작일지 모르겠다.

이웃이기도, 친구이기도 했던 우리 사이, 이웃은 떠나고 이제는 친구의 자리만 남았다. 늘어난 너와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우리이게 이웃사촌에서 진정한 친구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앞집 친구와 함께 나누어 마시던 아침 커피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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