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가족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다 뇨기가 있어 휴게소에 들렀다. 아내는 어린 아들과 같이 뒷좌석에 잠들어 있었다.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여닫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다시 차를 몰고 달리고 있는데 문득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저예요."
어떤 여자의 귀 익은 목소리였다. 당시는 발신번호 표시 서비스가 유료였고 난 가입을 하지 않은 상태라 발신자를 종잡을 수 없었다. 게다가 주말에 내게 전화를 걸 여자는 '맹세코' 없었다.
"누구세요?"
"나예요!"
앗, 이것은 아내의 목소리였다. 운전을 하며 뒷좌석을 훑었다. 잠들어 있어야 할 아내는 보이지 않고 막 잠에서 깬 아들만 있었다. 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 아내 역시 화장실을 갔던 거였다. 아내가 화장실을 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분명 아내의 목소리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이윽고 차 한 대가 도착했고 거기서 아내가 내렸다. 아내의 눈에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극강의 잔소리가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난 우산도 없이 잔소리에 흠뻑 젖었다.
남편이 버리고 갔다는 얘기를 하고 히치하이킹을 하는 게 무척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게다가 다섯 명이 탄 차여서 아내는 낯선 사내의 무릎에 앉아 왔다고 했다. 탑승자를 확인도 하지 않고 출발한 데다 아내의 목소리까지 단박에 알아듣지 못한 것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그리고 엄마가 오지도 않았는데 출발한 차에 멀뚱멀뚱 앉아 있었던 5살 아들에게까지 화살이 날아갔다.
집으로 오는 내내 지옥을 경험했다. 휴게소에서 오줌 한 번 쌌을 뿐인데 이렇게 칼침을 맞다니 억울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아내의 화는 근 일주일을 넘기고도 시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를 구슬려 처가에 갔다. 항상 내편을 들어주는 처가 부모님의 도움을 빌어야 했다.
부모님 앞에서 아내가 씩씩거리며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내편을 들어야 할 장모님이 아내 편을 들었고, 아무 말 없이 TV만 보고 있어야 할 장인어른이 내편을 들었다. 부모님 사이에 흐르는 냉기가 감지되었고 뭔가 불길했다.
장모님의 전언에 따르면 일주일 전 두 분이 차를 타고 목욕탕에 갔다고 한다. 목욕을 마치고 나와 차에 올랐는데 차 앞에 주차금지 고깔이 있었다. 장모님이 내려 고깔을 치웠는데 장인어른이 무심코 차를 몰고 집으로 가버린 것이었다.
뒤늦게 집에 걸어온 장모님이 더 황당했던 것은 그때까지도 장인어른은 장모님을 태우지 않고 온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앙금이 살짝 가라앉는 차에 우리가 와서 다시 불을 지핀 것이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2라운드가 시작되기 전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