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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론산바몬드 Jan 13. 2023

소고기와 장모님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아내는 5녀 1남 중 셋째였다. 아이 여섯이 우글대는 당시 사진을 보면 끔찍하다. 초등학교 방과후 돌봄교실을 닮았다. 셋째 딸은 얼굴도 보지 말고 데려가라는 말이 있다. 옛말 틀리지 않다고 해서 그만 얼굴을 안 봤다.(글자 그대로다. 얼굴에 대한 평가가 담긴 말은 결코 아니다)


사위 다섯은 묘한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 누가 무엇을 사드렸다는 얘기를 들으면 가만히 있기 어렵다. 효심의 발효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부모님께 성의를 표했다.(부모님께는 눈독 들일 만한 유산도 없다)


어느 일요일, 장인, 장모님에게 소고기를 대접하려 멀리 한우마을로 갔다. 가끔 식사 대접은 했지만 한우는 그때가 처음이지 싶다. 광주 출신의 장모님은 성격이 화통해서 손이 컸다. 가난하지만 돈을 써야 할 때는 아끼지 않으셨다. 물론 대접받을 때도 확실한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날 가진 돈을 다 쏟아붓는다는 느낌으로 신나게 소고기를 구웠다.


부모님이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돈이 아깝지 않았다. 특히 식성 좋은 장인어른은 그날 엄청 과식하셨다. 장인의 부푼 배만큼 셋째 사위의 점수 게이지도 한껏 올랐다. 잘 먹었다며 등을 두드려 주시는 장모님의 손에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믹스커피로 마무리를 할 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얼른 주차장으로 가서 다마스를 몰고 나왔다. 앞자리에 아내가 타고 뒷좌석에 장인이 타는 것을 백미러로 보았다. 모두가 타고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운명의 신이 내게 침을 뱉었다.


액셀을 밟고 출발하는데 비명소리가 들렸다. 장모님이 차에 한 발을 올렸을 때 내가 출발한 것이었다. 다행히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결코 장모님을 해칠 생각은 없었다. 집으로 오는 내내 장모님의 불같은 성화를 들어야 했다. 광주 사투리에 그렇게 생생한 욕이 많은 줄 몰랐다.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소고기로 벌어 들인 점수는 이내 바닥을 쳤고 한동안 회복하지 못했다. 주식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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