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이 싫다

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by 구론산바몬드

배트맨을 소재로 하는 영화 다크나이트 시리즈 1편에는 주인공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 가면을 선별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에 대량으로 주문한 배트맨 가면을 웨인이 망치로 내리치며 강도를 시험하는 장면인데, 가벼운 망치질에도 가면이 부서지자 “역시 중국산은 어쩔 수 없다”는 대사를 내뱉는다.


거대한 중국시장에도 영화를 팔아야 하는 제작사에서 그런 대사를 부러 삽입한 걸 보면 중국을 폄훼하려는 의도라기보다는 일종의 유머 코드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Made in China’가 ‘싸구려’라는 이미지는 세계가 공통으로 갖는 감성인가 보다. 나도 비슷한 이유로 중국산을 싫어한다. 중국 때문에 내가 울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대학 4학년이던 무렵이다. 노량진 모 고시학원에서 일요일마다 교육학 문제풀이 무료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5월 어느 일요일 오후 학원을 나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멀리 63 빌딩을 배경으로 고시학원이 즐비한 노량진은 수험생인 내게 낭만과 망연한 희망을 샘솟게 하는 이국의 땅과도 같았다. 슬리퍼와 체육복 차림의 딱 봐도 공시생 티가 나는 사람들의 움츠린 어깨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퍼덕이는 활어의 모습은 무척 대조적이었다.


노량진 지하철역 부근에 늘어선 노점상의 숱한 음식들을 지나치는 것은 일주일 전쯤 마지막 식사를 한 나에게 무척 고역이었다. 미이라의 부활처럼 오래 잊고 있었던 허기가 깨어났다. 나는 결국 마을버스비 500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지하철은 타야만 했지만 6㎞ 정도만 걸어가면 마을버스비를 아낄 수 있을 터였다.


500원으로 최대한 배를 불릴 수 있는 아이템을 골라야 했다. 단것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는 말, 그래서 초콜릿을 사 먹을까도 생각했고, 라면을 사서 물과 함께 먹으면 뱃속에서 잔뜩 불어 포만감을 주지는 않을까 갖가지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러던 중 그것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은 아니었을까.


노릇노릇 잘 구워낸 냄새도 매혹적이었지만 그보다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것의 크기였다. 과장 없이 내 얼굴 크기만 한 빵! 게다가 하나에 500원이라 큼지막하게 붙여진 가격도 무척 파격적이었다. 쇼핑하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말 “어머, 이건 사야 해!”를 처음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값을 치르고 빵을 받아 들기 직전 내 기쁨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런데 빵을 잡는 순간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크기에 비해 너무 가벼웠다. 설마 하며 빵을 한입 베어 무는데 그 불길함은 현실이 되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 왔다. 부드럽고 얇은 빵껍질을 뚫고 윗니와 아랫니가 고스란히 허공을 씹으며 만났다. 아무것도 없었다. 얇은 막 안에 꿀 같은 것이 발려 있을 뿐 공기만이 그 큰 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제야 노점상 수레 앞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빵!’ 그 옆엔 괄호 속에 ‘공갈빵’이라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난생처음 허무가 무엇인지 체감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울면서 뭉치면 한 줌도 채 되지 않을 그 빵을 오래도록 씹고 또 씹었다.


그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임용시험에 합격하리라는 희망처럼 멀고도 멀었다. 그리고 중국이 정말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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