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이취 Feb 04. 2021

울음 뚝, 우울 뚝

"엄마 내 소원은 죽어도 엄마와 함께 하는 거예요"


평소와 달리 친구를 만나고 집에 늦게 들어온 내게 아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이야기한다.

"아우 끔찍해라."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아이와 함께한 남편이 한마디 한다.


 7년 전 속이 더부룩하고 미슥거리기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아이와 나는 거의 한 몸처럼 지냈다. 그동안 우리는 24시간 이상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아이는 나의 저녁 시간 부재에 마음이 허전했나 보다. 내게 '소원'이라는 예쁜 말로 함께하고 싶단 마음을 표현한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생각보다 크기가 작고 말라서 안다가 어떻게 잘못되는 거 아닌지 걱정했다. 이 아스러질 거 같은 작디작은 몸뚱이와 내 큰 키와 몸은 분명하게 대조되었다. 그 순간 난 내가 보고 듣고 자란 최상의 '엄마' 이미지들을 조합해 엄마가 되었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내게 화낸 적이 별로 없었다. 딸, 딸, 아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나를 다른 형제들과 똑같이 사랑해준 유일한 어른이었고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이었다. 나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기를 위해 젖가슴이 헐어도 고통을 참으며 모유 수유를 했다. 직접 이유식을 만들고 책을 읽어주었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 덕에 하지 않아 몰랐던 빨래와 청소도 아이를 키우며 제대로 할 줄 알게 되었다. 그 무렵 남편은 회사에서 새벽에 들어와 새벽에 나갔고 주말도 상사 눈치를 보며 회사에 나갔다. 처음 아기를 보며 다짐했던 것과 다르게 난 금방 지쳤다. 아기에게 잘하려고만 하니 내 일상생활이 마치 24시간 출퇴근 없는 직장처럼 느껴졌다. 완벽한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게 우울하고 부담스러웠다. 집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러다가 복직을 했다.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생기면 나의 우울감도 나아질 거라 판단했고 내가 느끼는 우울감이 사회에 동떨어져 느끼는 고립감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일터로 돌아간 후 아기는 어린이집에 전혀 적응하지 못했다. 처음엔 단순한 분리불안이라 생각하고 금방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는데 아이는 3년 동안 아침마다 가기 싫다고 울었다. 아이를 봐주시는 선생님에게도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직장에서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며 최대한 빨리 아이를 데리러 가려고 노력했다. 회의 중에도 일어섰고 어린이집 문 앞 직전까지 학부모와 상담 전화를 했다. 점점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조여왔다. 육아도 일도,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주어지는 역할들이 버거워 미칠 것 같았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엄마,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친절한 교사, 이해심 많은 아내, 시부모 잘 챙기는 며느리, 알아서 잘하는 딸이 되기 위해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나'에게서 멀어지며 불안감은 커져갔다.     


  갑자기 가 맡은 학급의 학생들 간 문제가 생겼다. 각각 학생들의 부모님들도 학교에 달려오셨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불면증이 시작됐다. 아이와의 일상에는 껍데기만 존재했다. 무능력한 교사가 될지어도 무능력한 엄마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휴직을 했다.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운 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잘못된 건 분명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모든 단추를 다 풀고 차근차근 다시 끼우고 싶었다. 그게 나를 위한 길이고, 아이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작은 철저히 나와 멀어진 내게 다가가려는 서툰 걸음이었다. 문제를 직면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려웠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시작한 역할극을 종료하고 싶었다. 일상적인 주제로 누가보든 안보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반복해 쓰다 보니 조금씩 어디에서 화가 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라는 사람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늦은 사춘기를 겪으며 알아가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의식하던 생각들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음을, 주입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냥 못한다고 도망치고만 싶었던 순간에도 내가 원하는 바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빠는 운전해. 그래야 엄마가 내 옆에 앉지.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요.”

 출근길에 매일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남편이 이걸 들으며 속으로 서운해하려나. 아이는 아빠가 있건 없건 연신 내게만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둘 다 안다. 아이가 나와 남편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걸어갈 때 가장 표정이 밝다는 것을.


  아이의 입안에 유치가 빠지고 새 이가 나고 있다. 아이는 더 이상 유치원에 가기 전에 울지 않는다. 웃으며 잘 걸어간다. 나도 더 이상 무력감을 느끼며 우울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하고 내 욕망과 감정을 확인하며 현실과 적절히 조절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와 내가 둘 다 잘 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찾아가는 22가지 질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