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학기가 시작되었다. 개학식 날 우리 반 아이들과 2학기에 이루고 싶은 것을 함께 나눴다.
"저는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니까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요."
평소 친구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학생이었다. 모둠활동에서 자기만의 다른 의견을 내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아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걸 몇 차례 봤다. 주변 친구들이 아무리 얘기해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는데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고 싶은 걸 2학기 목표로 잡다니. 의외였다.
<뚱뚱한 게 잘못일까>에 나오는 젤리는 반에서 코미디 여왕으로 불리는 학급의 인싸다. 다들 젤리가 하는 말에 웃는다. 인기가 많아 마냥 밝은 것 같아 보이는젤리에게도자기만의 고민이 있다. 바로 진짜 자기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지 못한다는 거다. 친구들이 젤리의 외모에 대해뚱뚱하다 놀려도장난 같은 말로 넘어가기만 할 뿐 기분이 나쁘다는 걸 표현하지 못한다. 할아버지의 무례한 언사에 상처 받지만 그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친한 친구여도 엄마에게도 웃기만 할 뿐 부정적인 감정을 숨긴다. 대신 일기장에 자신의 우울하거나 속상한 마음을 시로 털어놓는다.
추하고 울퉁불퉁하고 모난 벽돌 그리고 시멘트가 벽돌을 단단히 고정한다 벽이 절대 무너지지 않도록 그러니까 매끄럽고 새하얗고 부서진데 없는 것이 벽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은 매끄럽고 새하얗고 부서진 데 없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 주지 않았을 때만
젤리 엄마의 뮤지션 남자 친구 레닌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보이지 못하는 젤리를 알아채고 용기를 준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걸 통해 네가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는지도 함께 보인다며 힘을 준다. 그리고 젤리가 직접 하기 어려운 말을 노래를 통해 진심을 내보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남들에게 숨기는 가면에 대해가장 처음 생각나는 건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생일날 엄마가 불독 강아지 인형을 선물로 주셨다. 못생긴 인형이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기분좋게 해드리고 싶은 맘에 과장되게 좋은 척을 했다. 이후로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불독인형을 무지 좋아한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걸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찝집했다.스스로 연기를 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오래도록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실망하고 기분나빠할 것이 두려웠다.내가 원하는 행동이 아닌 상대방 반응을 예상하고 행동을 선택하곤 했다.
책의중간중간에 나오는 젤리의 속마음을 담은 시들이정말 좋다. 비유 표현들이 주옥같다. 읽다 보면 자연스레 공감하여'다들 그렇구나 나만 남들을 의식하고 숨긴 게 아니네'하는 위로를 얻게 된다. 청소년 도서임에도어른인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고 친구들 사이의 인기가 매우 중요해진다.심지어 처음에 내가 언급한, 친구들을 별 신경 쓰지 않는다던 학생조차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남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다 보면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하기에 자존감이 점점떨어진다.나보다 나아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열등감이 생기기도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숨기고 참는아이들에게 이 책은 말을 건다.그런 네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찬찬히 들여다보고 표현해보라고.
남을 많이 의식하는 걸 넘어서서부족한 자신의 모습에 심하게위축된건않은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처음엔 엄마 남자 친구가 집에 자주 오는 영국의 개방적인 문화에 놀라다 나중엔 젤리 가족의 변화를 응원하고 눈물을흘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