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

by 유정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저번 글 이후 독자들이 준 피드백이다. 처음 그 얘기를 듣고서는 “응? 어떻게 자기를 잃을 수 있나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나 역시 되물었었는데, 그 시절을 곰곰이 다시 떠올려보니 맞다. 그랬었지.. 나를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발버둥 치며 버텨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일과 조직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나는 3년 동안 책임감과 오기만으로 버텼다. 내가 선택한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었고, 끝을 보고 나와야 앞으로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너무 오랫동안 그 꿈만 바라보고 달려왔기에 그 일 외에는 전혀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데 어딜 가겠는가. 그리고 그 시절 내 생각이 정말 옳은 판단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괜히 나갔다가 후회하면 어떡하지. 달랑 1년 일해보고 뭘 안다고. 내가 본 게 이 업계의 전부는 아닐 수 있잖아. 다른 사람들도 다 버티는데, 내가 뭐라고.. 뭐가 있겠지. 그러니까 다들 이 일을 하겠지. 우선 끝까지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몸은 어쩔 수 없이 깨어있는 시간의 90% 동안 회사 안에 있었지만, 정신만은 그 조직문화에 동화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해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았고, 내가 처음에 안 좋다고 생각했던 선배들의 업무 버릇을 닮지 않으려고 애썼다. 지금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이야기다. 새파란 신입이, 무조건 선배들을 배우고 닮고 따라 해도 모자랄 신입이 감히 그들을 평가하고, 자기가 생각하기에 나쁜 버릇은 닮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니 말이다.


나는 최대한 티 내지 않고 깍듯이 선배들을 대하려고 했지만, 만만하고 편한 후배는 아니었을 것이다. 내 사수는 남들에게 내 욕을 하고 다녔다. 원래 남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고, 회사에는 그 사수와 술/담배를 자주 하며 수다 떠는 무리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회사의 그 누구와도 마음 터놓고 지내지 않았다. 내가 누구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하면 그 선배한테 다시 얘기 들어갈 것이 뻔했기 때문에 그냥, 혼자 버텼다. 그 선배는 가끔, “난 네가 무섭다”라고 했다. 자기가 아무리 갈궈도 별 반응 없는 나를, 하지만 본인의 단점을 다 알고 있는 나를 그 사람은 무서워했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 집에 못 가게 하고 자기 일 뒤치다꺼리만 시켰나 보다. 아 그렇구나.. 이제야 그 사람 마음도 좀 이해가 간다.


어쨌든 나는 그 시절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면, 그냥 실컷 울고 와서 다시 일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에 들어가서 혼자 울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컴퓨터를 보고 앉았다. 사람이 없는 밤에는 회사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놀이터에 가서 혼자 꺼이꺼이 울고 돌아와 일하곤 했다. 그러면 좀 버틸 만했다. 회사의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다짐’을 많이 했다. 저건 이상하다. 저건 닮지 말자.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하지 말자. 억지로 순응하지 말자고 하면서 그 다짐을 글로 남겼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기한을 정했던 것 같다. 이곳에서 5년을 넘게 있으면 안 된다. 그럼 나도 아마 저들을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나도 순응하게 될지 모른다. 그냥 저 팀장님같이, 다른 데 갈 곳이 없어서 여기 계속 있게 될지 모른다. 5년 넘게 이 조직에 있으면 내가 지금 생각하는 이 이상한 것들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지 말자. 그러면 안 된다.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었다. 또, 30살 전에 퇴사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 30살이 넘으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가 없어질까 두려웠다. 혹시나 해서 예전, 드라이브에 저장해 놓은 글들이 있을 것 같아 찾아보았는데 몇 개가 그대로 있다. 아래에 그 시절 썼던 글의 일부를 맞춤법에 맞게 수정하여 첨부한다.






2007년 6월 14일 / 이해하면 안 되는 것, 이해하기 싫은 것

- 아무리 광고주라도, 우리가 죄지은 게 없는데 알아서 너무 저자세로 갈 필요는 없다. 우리 일 똑바로 똘똘하게 잘하고, 생각 당당히 얘기할 수 있어야 파트너다. 나는 그들의 하인이 되려고 이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다.
- 누가 시킨다고, 누가 넣으란다고 나 자신도 이해 못 하는 말을 기획서에 그냥 넣지 말자. 모르겠으면 물어보자. 확실히 이해하고 쓰자. 내 생각이 있으면 말하자.
- 야근, 주말근무에 너무 젖어버리지 말자. 일할 때 확실히, 쉴 수 있을 때 최대한 쉬자. 무조건 앉아만 있다고 일 잘하는 것 아니다. 무조건 회사 나온다고 없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디어는, 좋은 생각은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정도는 쉬며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해야 나오는 것이다.
- 내 생활을 갖자. 왜 사는가? 왜 일하는가???
- 몸이 부서져라 악을 쓰고 일해봤자 아무도 안 알아준다. 결과로 말할 뿐. 일을 오래 하는 사람 말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자.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무언가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생각 같다.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있겠지? 너무 비현실적이다. 내 인생을 운에 맡기지 말자.
- 이 회사 아니면 갈 데 없다고? 그런 사람은 절대 되지 말자... 내 실력 키우기. 무조건, 내 실력 키우기.
-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돌궐제국의 영웅 돈유크 비문)
- “삶은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 상태를 뛰어넘으려는 노력들로 이뤄져 있다. 현 상태에 안주하려는 삶은 그저 죽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시몬드보부아르)


오랜만에 저 글들을 봤는데, 오죽했으면 저런 글까지 쓰며 다짐했을까 싶다. 정말로 안주하기 싫고, 그 조직에 녹아들기 싫었나 보다. 어찌 됐던, 그때 내가 정해놓았던 기간까지 버티면서 했던 이런저런 생각들과 그때 그곳의 사람들을 관찰하며 느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대부분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교훈을 주었고, 나는 그곳에서의 삶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가고 있다. 극한으로 자유롭지 않았던 그때의 경험이, 극한으로 자유로운 나를 만들었다. 만약 그때 그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목표했던 4년을 끝까지 버티지 않고 중간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면, 나는 지금 조금 다르게 살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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