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했던 꿈을 이루었지만

by 유정

어떤 직업을 꿈으로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그 직업을 가진 내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설레었고, 눈빛이 반짝였으며, 그 꿈만 이루면 정말 세상 원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대학시절 나는, 축제 기획자가 되고 싶었다. 축제의 비일상성이 좋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합법적으로 만들어놓은 일탈의 공간에 사람들이 와서 그 공간을 마음껏 즐기고 추억까지 가져가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니까, 공연을 만들고 보는 것도 너무 좋아하니까. 게다가 도시학을 전공했고, 마케팅도 아주 빡세게 잘 배웠으니까. 도시를 마케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축제기획! 나아가 우리나라를 마케팅하는 올림픽, 엑스포 기획까지 해보자! 그럼 나는 매일매일을 축제 속에서 살겠지. 날마다 흥겨운 음악과 공연과 춤이 있는 곳에서, 이곳저곳에서 여행하듯이 살 수 있겠지.' 이게 나의 직업 선택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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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대부분이 고시나 대기업 입사 준비를 하던 대학교 3학년 무렵부터, 나는 온갖 축제의 자원봉사와 운영요원을 자처하여 무급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이 일이 내 적성에 진짜 맞는지 미리 그 업계에서 체험해 봐야 해.’

‘비록 무급 알바라도 열심히 하다 보면 혹시 알아, 그 회사 직원 눈에 띄어 취업 기회가 올 수도 있잖아.’

‘이런 운영요원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 관련 회사 원서 넣을 때 내 진정성을 알아주겠지.’ 라는 나름 치밀하게 계산된 생각에서였다.


내가 졸업할 때만 해도 취업이 잘 안 되던 시기라 졸업 후 1년은 백수로 지내다 취업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이런 전략이 통했던 건지 졸업 전에 원하던 기획사에 취업을 했다. 동기들 중 취업 1호였다. 뛸 듯이 기뻤다. 이제 내 인생은 성공이고, 탄탄대로인 줄 알았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입사하자마자 처음 맡은 프로젝트가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라고 업계 전체에서 소문이 자자하던 1,700억짜리 엑스포였다. 선배들은 갓 입사한 나에게 말했다.


“이야~ 너 진짜 대박이다. 이 업계에서 평생 있어도 엑스포 한번 못해본 사람도 많아~ 그런데 너는 들어오자마자 대전엑스포, 서울올림픽 만들었던 분들이랑 일하잖아. 조직위원장은 이어령 전 장관이래. 기획단장은 000이고~ 우리 회사 10년 넘은 팀장들도 그 프로젝트 들어가고 싶어 난리인데 너는 입사 한 달 만에 그 팀에 들어갔어. 너 진짜 운 좋은 줄 알고 열심히 해.”


그 말은 맞는 말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국가행사는 ‘88 서울올림픽, ’ 97 대전엑스포뿐이었을 때라, 그때 올림픽과 엑스포 기획이나 운영팀으로 참여한 분들은 20년 동안 업계에서 큰소리 떵떵 치며 대접받았고, 여기저기에서 각 축제의 조직위원장으로 불려 다니며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입사하자마자 서울올림픽, 대전엑스포 이후의 최대규모 국가행사를 하게 되면, 그다음 개최될 여수엑스포, 아시안게임, 올림픽 팀에도 들어가며 나 역시 이 업계에서 떵떵거릴 수 있는 커리어를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나같이 새파란 신입이 그렇게 유명한 분들과 같이 회의를 하고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안 그래도 열정 뿜뿜한 신입한테 뭔지 모를 사명감과 불타는 의지까지 주어졌다. ‘감사한 기회다. 나는 꼭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리… 이것만 잘하면 난 탄탄대로다.. 불끈!!’


하지만, 감사한 마음과 열정으로 즐겁게 회사를 다녔던 건 약 1년 남짓.. 2년 차가 되어가면서 ‘하.. 이게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취업 전부터 이 업계를 경험해 보겠다고 그렇게 자원봉사와 운영요원을 했지만, 내가 본 것은 그 행사의 기획자가 하는 10,000가지 일의 1%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 기획자가 하얗게 밤새우며 피워댔던 담배들, 그 숱한 밤들, 수정해야 하는 기획서, 고성이 오가는 회의실, 그를 미치게 하는 청와대 결재 라인, 행사를 주최한 정치인들의 숨은 의도, 국회의원들의 자리싸움을 나는 알지 못했다. 실제 경험하는 일은 상상하던 것들과 너무 달랐다.


행사는 단 3 달이지만, 그 3달을 준비하기 위해 3년 동안 밤을 새운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평균 퇴근시간이 새벽 2시이고, 주말에 쉬는 것은 ‘의리 없는 짓’인 줄 몰랐다. 공연 보는 것을 좋아해서 공연기획을 꿈꿨지만, 공연 기획자는 무대 뒤에서 출연자 관리하고 관람객의 안전에 신경 쓰느라 정작 공연은 즐기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다. 기획자가 귀에 꽂고 다니던 그 멋져 보이던 무전기에는 온갖 욕과 비속어, 고성이 난무한다는 것을 몰랐다. 여기저기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높은 연봉을 주고 모셔가는 업계의 유명하신 분들이, 실상은 대전엑스포 하면 대전에서 1년, 평창올림픽 때는 평창에서 1년, 여수엑스포 하면 여수에서 1년 이렇게 떠돌며 사느라 정작 본인 가족들과는 어색한 사이인 줄 몰랐다. 그래서 이 업계에 그렇게 노처녀, 노총각이 많은 줄도, 나는 미처 몰랐다.


처음엔, 내가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내가 더 능력을 쌓고, 더 열심히 해서 인정받고, 더 위로 올라가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이것만 버티면 난 저분들처럼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유명한 위원장님들의 말씀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받아 적고, 그분들의 엄청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려고 애썼다. 그런데 몇 년을 그 유명한 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나는 저분들처럼 살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우리 회사의 본부장님도, 상무님도, 부럽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10년 잘 버티면 어떻게 되고, 20년 잘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게 뻔히 보이는데, 나는 그분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방황이 시작됐다. 너무나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꿈이었고, 나는 그것밖에 없었는데... 비로소 꿈을 이루었는데, 그곳은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니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계속 가야 하는데, 더 이상 갈 곳이,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어떡하지.. 그때의 허무함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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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실패의 원인은 명확했다. 어떤 “직업”을 꿈으로 가졌다는 것. 모든 일에는 ‘보이지 않는 이면’이 있는데,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그 일을 동경한 것이 화근이었다. 직업은 그냥 ‘일’ 일뿐이었다. 나는 내 생활 전혀 없이 일만 한다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 일을 하며 깨달았다. 단순히 직업을 꿈으로 갖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를 정했어야 했다. 나에게는 돈과 커리어보다 자유와 시간, 그리고 가족, 친구와 함께 즐기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게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을 그냥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남은 것은 책임감이었다. 그냥, 시작한 것은 끝내고 나간다는 책임감. 나갈 때 나가더라도, 어찌 됐든 끝을 보고 간다는 오기. 3년 동안 밤새며 기획한 것들이 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지는 것은 보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3년을 눈물로 버티며 일했는데, 행사 이후 결과보고가 1년이나 걸리는 것은 또 몰랐다. 결과보고서 쓰면서도 이 행사 저 행사로 팔려 다녀 집에도 못 가고 회사 근처 찜질방에서 3-4시간만 자며 일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는 총 4년을 일하고 첫 회사에서 도망치듯 퇴사했다.


그 이후에는 꿈을 꾸지 않고 산다. 그냥, 나의 중요한 가치인 자유를 위해 일하고 공부한다. 순간순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을 선택한다.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었던 시절보다 더 행복하다. 꿈을 꾸지 않고, 그냥 지금 살고 싶은 대로 사니 더 좋은 것 같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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