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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스포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Environment in Sport (6)

by 축축박사


올해 초에 브런치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이 지나고 완연한 여름이 되었습니다. 올여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벌써 지난주엔 최고기온이 38도를 기록했는데, 더운 공기에 숨쉬기가 힘들더라고요. 언론에서는 더 빨라진 열대야와 폭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이제 이런 현상은 단지 한 번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매년 더 심해지는 장기적인 추세처럼 보입니다.



폭염 속의 스포츠

이렇게 더운 날이면 스포츠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FIFA가 주관하는 클럽월드컵이 한창인데요, 모든 선수들이 한 목소리로 더위와 그로 인한 체력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 대회는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현지 중계를 고려해 대부분의 경기를 한낮에 진행해 문제가 되고 있죠. (미국 현지시간 낮 12시, 오후 3시, 6시, 9시 / 유럽 시간으로는 저녁 5시, 8시, 11시, 새벽 2시) 주요 경기는 오후 3시에 열리는데, 이는 유럽 시청자 기준으로는 오후 5시입니다. 축구의 중심 소비층이 유럽 팬이라는 점에서 ‘시장 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지만, 정작 경기하는 선수들과 경기장을 찾은 현지 팬들은 죽을 맛일 겁니다. 실제로 클럽월드컵에 출전한 울산HD의 조현우 선수도 인터뷰에서 무더위와 낙뢰 등 기후 이슈로 인해 경기 준비와 플레이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2025 FIFA 클럽월드컵 8강전 도르트문트와의 경기 중 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레알마드리드의 주드 벨링엄 (출처 : 이스트러더퍼스 / AFP 연합뉴스)


국내스포츠의 혹서기 대응

무더위 속에서 축구처럼 강도 높은 유산소 운동이 진행되면 선수들의 건강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최근 국내에서도 폭염이 계속되자 정부 차원에서 각 종목 단체에 혹서기 대응 현황을 점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K리그에서는 선수 보호를 위해 ‘쿨링 브레이크(Cooling Break)’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온이 섭씨 32도 이상일 경우, 전·후반에 한 번씩 심판은 90초에서 3분간 경기를 중단하고 선수들에게 휴식 시간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또 대부분의 프로 경기는 저녁 시간에 열리기 때문에 한낮보다는 나은 조건에서 경기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물론 충분치는 않을 겁니다. 요즘처럼 열대야가 일상화된 날씨에서는 밤에도 기온이 30도 이상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선수들의 체력 소모는 더욱 심해집니다. 이는 선수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름철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자주 찾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직관 중 관중이 더위로 쓰러지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저녁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혹서기 경기 중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팬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c117958.jpg 혹서기 K리그에서 진행되는 쿨링브레이크 (출처 : K리그)


이런 변화에 대응해 K리그와 KBO는 모두 폭염 관련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야구의 경우, 하루 최고기온이 섭씨 35도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경기를 취소할 수 있고, K리그도 ‘악천후’의 범위에 ‘폭염’을 추가해 경기 취소의 근거를 명문화했습니다. 실제로 KBO에서는 폭염으로 경기가 취소된 사례도 있죠. 미세먼지로 인한 경기 취소 규정이 생긴 2018년 이후, 프로스포츠에서 ‘경기를 멈추는 새로운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입니다.


사실 폭염의 가장 큰 피해자는 유소년 선수들일지도 모릅니다. 프로선수들이야 비교적 시원한 저녁에 경기를 하지만, 유소년 경기는 주로 낮에 열립니다. 게다가 인조잔디에서 뛰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라운드는 천연잔디보다 훨씬 뜨겁습니다. 최근 유소년 경기에서는 부상을 당하고도 땅에 누워 있지 못하고 바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라운드가 너무 뜨거워 도저히 누워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아직 신체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온열질환에 더 쉽게 노출되기도 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더워지는 날씨 탓에 실외 스포츠는 앞으로도 계속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겁니다.


이처럼 폭염 이슈가 커질수록 구단, 리그, 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대응책을 고민하게 됩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경기 시간을 저녁으로 조정하거나, 쿨링 브레이크처럼 경기 중 휴식을 늘리는 방식이겠죠. 201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일부 프로스포츠 구단에서 ‘쿨링 포그(Cooling Fog)’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경기장에 설치된 노즐에서 안개 형태로 물을 분사해 주변 온도를 낮추는 방식입니다. 이 외에도 물놀이 시설 설치 등 관중과 선수 모두가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K리그가 춘추제(봄 개막, 겨울 종료)에서 추춘제(가을 개막, 봄 종료)로 전환을 검토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름철 계속해서 심해지는 폭염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190812355429.jpg 2019년 K리그 경기장에 설치되고 가동되었던 쿨링 포그 시스템 (출처 : K리그)



기후변화의 시대, 장기적인 대응은?

하지만 이런 조치들은 어디까지나 ‘응급 대응’ 일뿐입니다. 문제의 본질은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여름 기온이 해마다 오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스포츠계는 단기적으로 이 폭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하고 함께 대응하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스포츠 종목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를 인식하고, 장기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는 2012년부터 ‘NHL GREEN’ 캠페인을 통해 환경에 대한 영향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동네의 얼어붙은 하천이나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처음 이 스포츠를 접했던 아이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 기회를 잃고 있습니다. 얼음이 어는 지역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을 접할 기회의 폭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곧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과도 연결됩니다.


관련기사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3/0000043854?sid=104


2018년에는 올림픽 종목 단체 중 최초로 ‘Sustainability Agenda 2030’을 발표한 세계요트연맹(World Sailing)도 있습니다. 나날이 심해지는 해양오염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요트라는 스포츠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젠다는 기술(Technical Standards), 이벤트 운영(Events), 교육(Training), 시설(Venues & Facilities), 구성원(Members), 참여 확대(Participation) 등 요트 스포츠를 구성하는 전 분야에 걸쳐 환경적 기준과 실천 과제를 담고 있습니다. 이 조직이 얼마나 진심으로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죠. 대회 운영 시 환경 영향 최소화는 물론, 요트 제작 시 재생에너지와 재생 원료 사용 의무화,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계획은, 스포츠가 단순히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아닌 적극적인 대응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젠다.PNG 2018년 World Sailing 에서 발표한 Sustainability Agenda 2030 표지 (출처 : World Sailing)


이제 우리도 눈앞에 닥친 더위를 어떻게 사고 없이 지나칠 수 있을까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함께 고민할 시점입니다. 특히 스포츠는 기후변화로 인해 실질적인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으니까요. 장기적인 접근에 가장 필요한 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입니다. 특히 환경 같은 분야는 시장 논리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공동의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주체가 필요하죠. 이번에 새롭게 정부가 출범한 만큼, 단기적인 대책과 더불어 장기적 방향성을 함께 고민해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제가 환경 이야기를 할 때마다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거 한다고 뭐가 바뀌냐.", "의미 없다.” 등등.. 환경문제를 ‘지구 최악의 조별과제’라고들 하죠. 모두가 동시에 함께 노력해야 하는 과제지만, 다들 수지타산이 맞지 않다며 서로 눈치 보기 바쁩니다. 실제로 NHL이나 World Sailing의 노력이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는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만으로 해양오염이 멈춘다거나 기후온난화가 멈추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구 최악의 조별과제는 어쨌든 우리 눈앞에 닥쳐있고,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나 하나쯤이야' 보다는 '나부터'의 마음가짐으로 마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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