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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호우로 경기장이 잠긴 날

Environment in Sport (7)

by 축축박사


올해는 큰 피해 없이 장마가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이번 주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폭우로 호우 피해와 인명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저도 주중에 대전 출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남부지방에서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서울로 올라오는 KTX 선로가 막혀 많은 열차들이 2~3시간 이상 지연됐고, 지연되지 않은 열차의 티켓을 겨우 구해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이런 기록적 폭우들이 점점 잦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충남 서산에서는 시간당 114.9mm의 폭우가 쏟아졌는데, 이는 100~2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기록적인 폭우라고 하죠. 그 외에도 남부의 여러 지역에서는 닷새간 많게는 800mm 가까운 폭우가 쏟아졌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비 피해가 하루빨리 복구될 수 있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최근 이러한 극심한 강수현상을 ‘극한호우’라고 부르고 있죠.




스포츠를 집어삼키는 폭우와 홍수

극한호우는 최근 그 횟수가 점점 잦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 패턴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는데, 2~3년 전부터 특정 지역에 ‘물폭탄’이라 부를 정도의 엄청난 폭우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스포츠계에서 한 장의 사진이 큰 화제가 되었는데, 바로 극한호우로 훼손된 영국의 AFC 윔블던(AFC Wimbledon, 잉글랜드 4부리그 리그2 소속) 팀의 경기장이었습니다. 2024년 9월 22일과 23일 사이, 런던에 이례적인 폭우가 쏟아졌고, 경기장 인근의 완들 강(River Wandle)이 1960년대 이후 처음으로 범람하면서 AFC 윔블던의 홈경기장이 완전히 침수되었습니다. 이 침수로 인해 경기장 잔디 위에는 거대한 싱크홀이 만들어졌죠. 바로 다음 주 예정되어 있었던 뉴캐슬과의 카라바오컵 3라운드 경기는 연기됐고, 경기장이 복구되기 전까지 모든 홈경기가 취소되었습니다. 침수된 경기장의 물을 펌프로 퍼냈는데 무려 10만 리터 이상의 물을 빼내야 했고, 잔디 복구에는 약 20일이 걸렸습니다. 이 사례는 스포츠계에 폭우와 홍수가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죠.


afc윔블던.PNG 2024년 경기장 침수로 AFC 윔블던 홈경기장에 발생한 싱크홀. 복구에 20일이 걸렸다. (출처 : PA)


사실 이러한 사례는 처음이 아닙니다. 영국의 또 다른 축구단인 글로스터 시티(Gloucester City FC, 잉글랜드 7부리그 서던리그 소속)는 2007년 심각한 홍수로 홈경기장인 메도우 파크(Meadow Park)가 무려 2.4m가량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후 2020년까지 주변의 다른 구단 경기장을 전전하며 홈경기장을 개보수했고, 인접한 세 번 강 주변에 제방을 보수한 뒤 관중석과 클럽하우스가 있는 부지 전체를 약 4m 높이는 공사를 거쳐 2020년에야 13년 만에 홈경기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스터 시티.PNG 2007년 발생한 홍수로 잠긴 글로스터 시티 홈경기장 (출처 : Neil Phelps)


홍수에 미리 대비한 곳도 있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Bundesliga)의 베르더 브레멘은 2015년,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494만 유로(약 80억 원)를 들여 홈경기장인 베저슈타디온(Weser Stadion) 주위의 베저 강(Weser Fluss)을 따라 설치된 제방을 보강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브레멘은 도시 자체가 홍수에 취약한 지역이고, 브레멘의 경기장은 베저 강 바로 옆에 위치해 있어 여러 차례 홍수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2013년 베저강에서 발생한 홍수 당시 강의 수위가 5.24m까지 상승했으며, 이는 제방 상단까지 단 6cm밖에 남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제방 높이를 6.5m까지 높이는 공사를 마쳤고, 실제로 이 제방은 2023년 겨울에 발생한 태풍 'Zoltan'이 브레멘을 덮쳤을 때 경기장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베저스타디온.PNG 베저 강변에 위치한 베르더 브레멘의 홈 경기장 (출처 : Weser Stadion)




그동안 여러 차례 글을 통해 환경이 스포츠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했는데, 홍수 또한 그중 하나입니다. 2050년까지 첼시, 사우스햄튼, 풀햄, 웨스트햄 등을 포함한 잉글랜드 축구리그 팀의 4분의 1이 매 시즌 홍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폭우는 스포츠와 이벤트 인프라, 시설 등을 손상시키고, 구단 입장에서는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는 요인입니다. 기후변화는 이러한 문제를 점점 더 악화시키고 있으며, 극한호우와 같은 극심한 기후가 더 자주 발생한다면 미래의 야외 스포츠는 지속가능성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경기장들은 이런 기후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인 전략과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올해는 비로 인한 피해가 더는 없기를 바랍니다.


https://www.nytimes.com/athletic/3460731/2022/08/01/football-role-tackling-climate-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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