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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Jun 28. 2024

퇴원 D+150, 긴 싸움에 지친 네게

건실한 우리 딸에게 보내는 응원의 편지

엄마 밤톨이가 초코파이를 먹었어, 병원 데려가야 할 것 같아. 강아지에게 초코는 독이라며,

"어머나 어떡해 잠시만 기다려 내가 곧 갈게 같이 가자. 얼마나 먹었어? 많이 걱정되고 불안해?"

라고 하지 못했어. 미안해. '아.. 조금 먹는 건 괜찮아. 강형욱도 한 번은 괜찮데'


귀가 쫑긋해지기 전의 밤톨이. 지금은 사막여우가 다 되었지만.

올해 난 폭풍리액션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다짐했었는데.. 그새 지쳤었더라. 미안하다. '엄마 공감받기가 젤 어려워 엄마는 극 T.' 그래? 네 기쁨이가 하는 널뛰기에 같이 타지 않으려고 애써 난 내 감정에 평행선을 그리려 하곤 해. 내 마음을 전하고 널 공감해 보려는 나의 모든 노력은 한참 부족하다. 그냥 핑계를 대본다.  



중2병. 아니 왼손에 흑염룡병? 너의 '기쁨이'가 운전대를 조종할 때와 '불안이'가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것을 지켜보는 것. '불안이'를 다스리려는 네 사투가 안되어 보일 때가 많다. 그래도 는 네가 늘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거 알지? 넌 끝까지 해내는 아이라고. 남이 말해주지 않아도 네 가슴 가득하게 그걸 매초 매 순간 기억하길. 


 '예기치 않은 즐거운 일이 가득하길 빌어요'라는 올초에 들었던 덕담을 네게 다시 전한다. '아직 그만큼 약하다는 거죠'했던 네 주치의 선생님의 말 역시. 자책도 후회도 다 내 몫이야. 넌 그냥 앞만, 지금과 내일만 봐. 마음에 아물지 못한 상처가 있는데 네 눈에도 내 눈에도 보이지 않으니 가끔은, 다 괜찮아진 건가? 싶을 때가 있다. 임산부 뱃지처럼 너를 위해 그런 뱃지 하나 있으면 좋겠네.  



요새 무척 많이 바라는 것이 있어. 주사 한 방에 네 흑염룡을 없애주는 명약을 발명하는 것. 네가 그런 건 없잖아라며. 명약? 네가 좋아하는 것 많이 하고, 많이 먹고 많이 웃는 것? 여름방학도 잘 보내자. 확실한 건 이 경기는 꽤나 긴 경기라는 거다. 짧으면 1년, 길면 3년? 야구도 9회면 끝인데 해를 넘기다니 너무했지. 어떨 땐 1초도 길 텐데.


이번 1학기를 이렇게 잘 보낼 수 있을지 난 상상 못 했었어. 그러니깐 너 정말 잘하고 있었어. 세상에는 예기치 못한 사고. 어디든 누구나 만나기도 하고. 또 곤란한 상황에 처한 건강한 내 딸아. 작년 엄마는 대안학교도 알아보고 검정고시 방법도 알아보고 했었어. 그럼에도 학교를 너무 좋아하는 너라서.. 조금 더 힘을 내자. 러닝 메이트처럼 네 옆에 있는 나도 길고 긴 레이스에 힘이 달릴 때가 있지만 그냥 계속 매일 운동하고 또 기도뿐이더라.


네 마음 한가득 평화가 흘러넘치길

네 마음속에 우물 가득히 채워진 깊은 사랑에 네가 단단히 뿌리를 딛고 서길

찐따 가득한 이상한 교실 속에서 꼿꼿이 설 용기를 얻길

그들의 써글 말들이 한쪽 귀에서 다른 쪽 귀로 흘러나가길


고비를 홀로 맞서는 네게 명약을 주지 못해서 못내 미안하지만 난 널 늘 응원한다.

너를 살리려면 뭐든 할 거야. 표현도 타이밍도 도대체 맞추지 못할 때가 많아 속상하다.

그래도 우리 몸 모든 촉수가 삶으로 향하도록 온 힘을 쏟자.


네가 어느 노래를 듣다 불행을 팔아 행복을 샀다 하니 내 얘기라며 달려왔었지. 그거 알아? 네 불행은 팔릴 수 없어. 사갈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네가 소화시킨 이 모든 어두워만 보이는 시간은 우릴 더 우리이게 할 거고 넌 그 터널을 잘 통과한 너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될 거야. 리즈시절로 가고 싶다고 했던 너. 이 시간을 끝내고 비로소 진짜 리즈시절이 시작될 거야. 내가 장담해. 그러니까 뒤 말고 앞을, 그리고 너를 보자. 온 마을이 너를 응원해. 함께, 모두가, 위클래스 샘도 수학 샘도 담임샘도 기타샘도 모두 모두 그리고 그 맨 앞자리에 선 네 응원군단 가족들 엄마 아빠 할부지 함무니도 잊지 마. 널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두의 진심이 네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많이 힘들지.. 애썼다. 오늘 잘 살아줘서 고마워.

백일 같은 하루를 살아내면 또 내일이 온다.

사랑하는 딸, 우리는 함께 이겨낼 거야.

엄마는 늘 네 곁에 같이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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