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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Jun 21. 2024

사랑주는 밤톨이와 평생 살기

유기견 밤톨이와 일상, 무지개 건넌 강아지 동생들, 똘이, 하니 이야기

똘이와 백또, 흑또, 점또 그리고 또...


똘이는 2월 17일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어릴 적 수첩에 빨간 펜으로 굵게 적어놓았던 나, 덕분에 그날을 기억해 냈다. 하얀 바탕에 베이지색 무늬가 있는 얌전하지만 똘똘해서 똘이였다. 작명은 주로 아빠가 담당했다. 똘이가 낳은 새끼들 이름은 백또를 비롯해 '또'자 돌림, 흑또, 점또...... 똘이의 마지막날 작은 언니와 아빠와 함께 뒷산에 갔다. 아니다, 누워 자는 모습 그대로 굳어진 똘이를 들고 산으로 간다며 집을 나선 아빠 뒷모습이 마지막 그날이었다. 뒷산 어느 나무 근처에 편히 쉬고 있을까.



하니, 김환. 지구 여행자.


하니는 딸 셋이 장성하여 각자의 가정을 꾸린 후에도 엄빠 곁을 지켰다. 하얀 푸들 하니. 아빠가 동물 병원에서 준 수첩에 적은 이름은 김환. 난 아빠의 작명 센스가 참 좋다. 우리 딸 셋은 그제야 하니라는 이름이 별명임을 알았다. 화니는 늘 지키던 자리, 베란다 앞마당에 있어야 하는데 홀연히 사라졌다. 한동안 우리 엄마는 하니 혹시 그리로 갔냐며 안양에 사는 작은 언니에게 전화로 묻기도 했다. 차로 네 시간은 거뜬히 넘기는 거리를 강아지가 그리로 갈리 만무하지만 그만큼 절절히 그리워하셨고 이후로 어느 강아지도 곁에 두지 못하셨다.

우리 자매 셋과 많은 추억을 함께 쌓은 하니와 똘이. 하니는 누군갈 따라나섰던 걸까? 아니면 지금도 우리끼리 하는 우스갯소리처럼 지구를 여행하고 있을까.


그리고 밤톨이 이야기...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나는 강아지를 들이지 못했다. 어쩌면 동생 같기도 했던 화니와 똘이 말고도 어릴적 늘 강아지 동생과 함께였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이유들. 식구가 하나 더, 입이 하나 더 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 시간과 힘을 내어 케어해야 하기 때문이고 남편은 털 달린 동물을 원체 무서워라 하는 새나 물고기과다. 그렇대도 우리 딸은 어릴 적부터 그렇게 강아지를 기르자 애걸복걸. 우린 아니 난 왜 그렇게 미루기만 했더라,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그렇다. 지쳤다.. 고 생각했고 힘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다 틀린 소리다. 보는 방향이 달랐다.

그렇게 늦었을지도 모를 즈음 밤톨이는 우리에게 왔다.


4월 2일이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유기견센터에서 엄마와 내 눈을 사로잡은 밤톨이는 2개월 정도 된 강아지. 우리가 데려가는 날을 기준으로 60일 전을 출생일로 잡았다. 밤톨이는 인근을 뛰놀다 약 일주일 전 센터에 구조되었다. 인근 식물원에서 배회하던 어미가 한 달 반을 잘 키우다가 새끼들만 구조되었다. 그래서인가, 배변 교육도 따로 필요 없었다. 그저 자는 곳 멀리 어딘가에 쉬하면 거기다가 패드를 두는 식으로 패드만 있으면 거기에 잘 처리했다. 어디든 켄넬에 넣고 여행을 가도 차멀미도 없고. 자거나 노는 공간에 응가도 쉬도 하지 않는다. 가정교육이 이렇게나 중요하다고ㅋ 밤톨이 어미를 언젠간 만나 이 고마움을 전해야 하는데. 바라건데 넌 계속 구조되지 않고 잘 피해서 즐겁게 배회하고 있길 바래.

강아지를 들이기 가장 걱정되었던 부분이 응가 쉬 교육과 혼자 두고 못 다니면 어떡하나였지만,  똘똘한 밤톨이가 일을 덜었다. 응가와 쉬를 베란다 일정한 공간에 처리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굳이 베란다에 분리를 잘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네살이 된 밤톨이 형아와 놀다보면 입질에 다치기 쉽고 그럴 때는 제재 겸 교육 차원에서 하우스! 외치고 그 근처 패드 위에 사료를 몇 알 주면 좋다고 달려간다. 밤톨이 형아는 몇 번 물려도 그렇게 좋다고 밤톨이를 쫓아다니고 밤톨이를 타려고 한다. 둘의 케미는 또 어찌나 좋은지.

작은 언니는 몇 년 전부터  비숑 가을이를 키우고 있다. 가을이는 사람을 그다지 따르지도 않고 고양이 같은 강아지다. 반면, 우리 밤톨이는 사람을 매우 좋아한다. 동물병원 가면 주사 맞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니, 어쩌면 이미 까먹었나? 어서 진료실에 의사 샘 만나자 하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네 번째 접종 맞던 날은 깨깽 하길래 마음이 아팠는데 엊그제 다섯 번째 접종 때는 의젓했다. 유기견 센터에서 칩은 언제 넣냐며 전화가 와서, 출생신고 같은 칩을 넣는 바늘은 크다 하여 더 미룰까 했지만 이번에 해치웠다. 출생신고랑 똑같다는 칩 넣기. 밤톨이는 꾹 참는다. 그날 밤 밤톨이 까만 코가 촉촉하지 않고 말랐다. 제 딴에 큰 일을 잘 견뎠다.  

버틴다! 버티면 안길 것이다. 칩을 넣던 날, 수고했어.


부러 리드줄을 짧게 잡고 산책을 한다. 산책은 가급적 금하라고 처방받았고 너무 어린 강아지라 다른 애들 분변에 노출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수의사 선생님 말씀. 그렇대도 어떻게 3개월을 가둬 놓을꼬. 현관에 발을 들이기만 해도 달려오는 걸. 접종 끝날까지 산책을 안 하는 건 실패. 사실은 일부러 실패.


한 달이 지나갈 무렵 처음으로 야외 배변을 했다. 평소보다 오래 바깥에 있었던 날, 아파트 건물을 들어서기 전에 응가를 성공했다. 그날은 5월 15일 스승의 날이었고 연이어 18일에는 쉬도 성공했다. 5개월이 채 되지 않은 강아지와 바깥놀이로 안전한 공간이 늘어가는 것 같아 흐뭇하다.

 
가끔 단지를 벗어나 육교 계단을 올라 가는데 내려오는 길은 절벽 같은지 무서워하는 모습이 귀엽다. 게다가 계단보다 엘리베이터에 냉큼 올라서니 의젓한 도시 강아지다. 굴러다니는 컵을 쫓다가 남은 떡볶이 국물맛에 캭캭대기도 하고, 부엌에서 뭔갈 다듬으면 내 실내화에 앉아 있다가 툭 떨어진 양파 조각도 좋다며 입에 문다. 그렇게 웃길 수가 없다. 산책을 끝낸 후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갈래? 해도 올라가는 것도 귀찮은 건지 무서운 건지 강짜를 부린다.  


밤톨이는 배가 고픈 상태를 유지한다. 집에 갓 왔을 때는 접시에 적정량을 줘도 사료가 남았다. 이후로 배도 좀 통통해져 절반은 접시에 주고 절반은 '앉아 손 교대 엎드려'를 반복하며 주거나 하우스 훈련을 했다. 한동안 수의사 선생님의 충고대로 사료 봉지에 적힌 양만큼 배급을 했지만 왠지 말라 보인다며 울 엄마아빠가 안타까워 하길래 다시 여쭈어 '약간 낙낙하게 주셔도 돼요' 하는 말을 듣고 조금 더 준다. 초보 강아지 엄마라서 개통령님과 인터넷 멘토님들이 없었다면 막막했을 것이다. 




어릴 적에야 주택에서 기르는 강아지는 동네 개랑 어울려 사료보다 개밥에 가리는 것도 없었지, 어쩌면 그때가 모든 강아지에겐 더나은 세상이겠다. 요즈음, 동물권 어쩌고 시끄럽게 티비에서 떠들어대도 조용히 뒤에 버려진 강아지들은 갈데가 없는걸. 밤톨이와 한 배 애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칩을 넣었다고 알려줄 겸 유기견 센터 담당직원에게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네 마리 중에 다른 두 마리는 좋은 곳에 입양이 되었고 한 마리만 센터에 남았다 했다. 123번, 밤톨이 동생아 너도 늦지 않은 때에 좋은 가족이 생기면 참 좋겠다. 포인핸드에 적힌 오늘자 입양율 20%에 안락사율 15% 그리고 구조된 202마리, 잔인한 현실이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용기가 필수요, 사랑이 넘쳐야 한다. 용기니 사랑이니 하는 말은 책 속에나 있고 사람에게도 가혹한 삶이, 강아지에게는 더 하겠지. 아파트 생활은 마당이 없으니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유의할 점이 적지 않고 산책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폐가 안가게 하려고 애쓴다. 모든 사람이 내맘같지 않고 행여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달랑 들어 올리기 바쁘다. 

쓸데없이 걱정이 많은 내게 밤톨이는 가끔 다가와 손 내밀고 힘내라고 하는 듯 하다.


어서 나를 들어 무릎에 앉히라, 한다.

포근한 밤톨이 체온, 나를 반기는 모습, 올라간 입꼬리.

함께라 참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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