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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Jul 05. 2024

지금 우리는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심의위원회를 앞두고 있다. 작년에는 전화로 출석했다. 딸은 병원에 있었고, 학폭 담당 선생님과 장학사와 무슨무슨 위원들이 전화선 너머에 있었다. 준비했던 각종 자료를 가지고 가고 싶었지만, 유선상으로 정리해서 차분히 설명했다.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여 어떠한 피해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합당한 처분을 바란다는 발언을 하기 위한 자리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출석할 수 있다. 그때는 몰랐다. 1년 후에 또 학폭을 신고하게 될 일이 생길지는 말이다.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딸은 제입으로 학교를 방문한 전담조사관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었다. 상해진단서를 함께 제출하면 교육청에서 심의위원회를 진행하는 것이 필수라고 했으나 전담조사관과 면담하고 진단서 유무와 관련 없이 교육청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상해 진단서는 작성에만 10만 원이 들었다. 이러한 절차를 미리 알고 끊은 것도 아니고 당일 병원에 갔을 때 학교에 제출할 서류로 예상하고 준비한 서류다. 병원에서 접수할 때부터 복잡한 게 참 많았다. 상해로 접수하시겠는가, 상해로 진단서를 끊을 것인가, 보험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당부. 아마도 관련한 고객 불만이 있다 보니 안내를 해주신 것이겠지. 아이가 머리를 어디 부딪힌 것인지 여부를 파악하고 누군가 때리면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단다.




두 번째로 학폭을 신고했던 날, 날이 참 좋은 날이었다. 뒷산에 올랐다. 오랜만에 밤톨이와 함께 산책을 한답시고 이사하고 나서 큰 맘먹고 오를 때는 즐거웠더랬다. 한 시간 반쯤 쉬엄쉬엄 올랐다가, 이른 오후가 되어 어디 한번 내려가볼까 하는데, 전화가 왔다.


덜컹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딸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대개 그렇다. “엄마, 데리러 올 수 있어?” 전화를 바꿔서 담임선생님이 상황을 설명했다. 횡설수설 상황을 채 정리하지 못한 아이를 도와주셨다. 산 아래까지 미친 듯이 내달려도 학교까지 5분 만에 가긴 어림도 없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아이를 바로 집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다시 한번 우리 딸이 사람복이 있다 싶어 고맙다.


그날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진단받았다. 그러고도 약 한 달 반동안 신경외과를 두 번 다녀왔으며, 응급실에 두 번 다녀왔다. 센터에서 진행한 두 번의 상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등교가 어려워 담임의 권유로 위클래스를 신청했다. 위클래스 선생님은 지역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총망라한 목록을 주었다.


다행히 이번 담임은 경험이 풍부한 학년 부장을 겸한 데다 딸과 동갑인 아이도 기르고 있는 엄마이고 반 아이들 성향에 대해 우리 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도에서 표창장을 받은, 훌륭한 위클래스 선생님도 함께 했다. 우리는 천천히 가기로 했다. 이번에는 우리 가정이 오롯이 홀로 비바람과 맞선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작년에는 내 아이의 힘듦과 피해받은 사실을 우리가 다 증명해내어야 했고 아무도 없었다.


위클래스 선생님은 왜 등교를 하지 않는지 상세하게 알고 싶어 했다. 여러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증상과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많이 귀찮다. 그래도 전해야 할 말은 있다. 우리 딸의 증상은 또래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하다. 곁에 있는 엄마조차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 덧내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관심 없는 누군가에게는 딸아이의 발버둥이 꾀병이고, 학교가 곧 지옥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나조차 이입하기 힘든 감정선의 요동침, 사춘기이기에 겪는 감정들이 얼마나 버티기 힘들까, 상상만 해 볼 뿐이다.


사랑의 열매 체온계처럼, 내 아이의 마음에 든 상처를 자로 재서 보여주는 기계가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한시라도 일찍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던 아이를 보면서 다 나았구나 느꼈던 때가 있었다.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게 해주고 싶었고,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서 날아가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 어느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냥 허니버터칩과 시리얼을 사놓거나 마라탕을 사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9시에 등교를 했다가 10시 반에 전화가 왔다. 벽에 머리를 부딪혀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갑자기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 교실에서 나쁜 말을 하는 친구 때문에 너무 열받아서 짜증을 내다가 그랬다고. 학폭은 학폭이고 그로 인해 결석이 길어지자 남 말하기 좋아하는 찐따스러운 언행에 상처를 받아가며 우린 그렇게 시간을 버텼다. 한 주가 지나자 한결 나아졌다.


얼마 전에 함께 외출을 다. 딸에게 코노는 힐링이고 올영은 행복이다. 올영에서 산 하트 브러시에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하이라이터로 반짝이는 코는 루돌프 컨셉? 그냥 하는 소리다.


네가 좋다면 좋다. 나는 오늘도 그냥 좋았다. 내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루씩만 살자.


우리 곁에 행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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