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김 Jun 07. 2024

미안미안 미얀맘

모슬희, 싱가포르, 미얀마, 한국.. 맘 유토피아는 어디일까?

구조조정이 있기 일년 반 전에 닥쳐 올 앞날은 모르고 사람을 더 뽑았었다. 팀을 키우고 매출도 늘리려는 심보. 호주나 싱가포르에서 중국어와 영어가 되고 비자도 스스로 해결되어야 했다. 쓰촨이 고향이고 싱가포리안과 결혼을 해서 현지 비자 해결, 업무상 영어도 무리가 없으며, 워킹맘을 채용했다.


재직하면서 들어선 둘째를 낳았고 입사 후 일년 채 되지 않아 4개월 휴직 후 출산과 함께 미얀마 국적 상주 도우미를 고용했다. 재택근무 90%라 사무실 출근은 옵션이었다. 상주한 도우미 미얀마에 아가를 두고 남의 집 아가가 있는 집을 도우러 싱가포르로 다했다.


애는 미얀마 도우미가 봐주고 엄마는 거실에서 서재로 일하러 갔다. 미얀마 도우미는 자신의 아이를 돌보려면 경제적 여유가 필요할 것이며 그녀의 아이를 돌보며 번 돈으로 자라는 아이가 더 나은 경제적 환경에서 더 밝을 미래를 기원했을 듯 하다.




그러고 보니 떠오르는 인연, 샤오인. 십여년 전  베이징에서 대학원을 다닐 적에 딸을 위해 우리도 도우미를 고용했다. 성이 인씨라 샤오인, 또는 우리식으로 이모, 아이阿姨라고 불렀다. 그분 역시 남편과 경하여 번 돈을 고향에서 아이를 돌보는 조부모에게 보냈다. 가끔 가다 가족에게 오는 전화에 쓰는 사투리는 알아 들을 수가 없는 말이었다.


손매가 야무져서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투명했고 망고를 깎으면 깍뚜기 썬 듯 반듯반듯했던 샤오인. 베이징에는 한국인이 많고, 경험이 많아 척하면 척이었다. 대학원 일정으로 유치원 등하원이 어렵거나 하면 도와주고 그외에도 잡다한 일을 도왔다. 우리 딸은 아주머니와 중국어로 잘도 소통했다. 팔개월부터 거기서 살다보니 써바이벌을 위해.


그분과 정착하기까지 몇분이 왔다갔다 겨우 만난거였다. 몇 시간이라도 사적인 공간인 집에 사람 들이기가 어디 쉽나. 일 잘 하는 것은 둘째요, 믿을 수 있는 이여야 한다. 싱가포르 직원도 그런 말을 했다. 좀 잘 있는다 싶으면, 건강에 무리가 있다며 고향에 가야한다고 하고. 그럴 경우는 막을 도리가 없다. 좀 오래 되면 우리도 한국에 갈겸 집을 비울 때, 샤오인도 고향에 다녀오고 했다. 나도 인연과 타이밍이 맞는 샤오인을 만나기까지 고생한 시간들이 기억난다. 대충 청소 좀 하다가 안방 침대 앉아서 수다떨다 가던 아줌마를 목격한 적도 있었고.




중국 대도시와 촌 간 임금 격차는 싱가포르와 미얀마 차이와 비슷하지 . 차이가 있다면 싱가포르 다수의 에이전트들이 싱가포르 맘과 미얀마 맘을 이어준다. 맞벌이가 필수이며 인력이 국력인 싱가포르 정부는 합법적으로 지원한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하여 여성의 커리어에 공백이 발생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비슷한 얘기를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나서 기사를 다시 찾았다. 최저임금법을 적용받지 않는 이주 가사노동자 혹은 유학생을 가사도우미 쓰라는 이 나라 대통령, 비공식 고용을 늘리자는 비상식적인 내용이었다.


비공식 고용. 남몰래 남의 시간을 사서 가사노동을 해결하라니,  사회적 가치를 얼마나 깎아내릴지 참 상상불가하다. 요즈음 들어 전문 인력이나 서비스로 엄빠를 돕기 위해 방과후활동, 아이돌보미, 산후 관리사 서비스 등등 생기고 있긴 하다. 충분치 않다, 늘. 여자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출산을 꺼리는 이유가 어디 그뿐일까.


싱가포르 엄마들이 부럽다. 도와주는 사람 쓰는 비용도 그럭저럭 합리적다. 싱가포르와 미얀마처럼 이웃한 국가와 차이나는 GDP만큼 불공평한 현실과 부조리함덕분이라 하더라도. 저 멀리 노르웨이나 스웨덴까지 바라기는 먼 미래같아 어렵다 하더라도 1인당 소득 몇몇만 불 시대를 열려면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라며? 현실이 이 허세같은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모든 마을이 육아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날을 꿈꿔본다.  


미얀마 도우미를 생각하면서 문득 '모슬희'가 떠올랐다. '눈물의 여왕'에서 유명해진 악역 '윤은성'을 위해 그녀는 그가 원할 만 하다 싶은 건 다 해줬다. 직접 커가는 내내 옆에 있어 주는 것만 빼고. 엄마 없이 자란 아들이 만든 엔딩은 막장이긴 한데 모슬희가 살았던 현실도 팍팍하긴 했겠다 싶다.


의식주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싱가포르로 향한 미얀마 도우미나 베이징에 온 샤오인을 누가 탓하랴. 더 잘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예전처럼 살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들도 모슬희처럼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과 먼 미래에 경제적 자립을 맞교환해야만 내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가지고 싶다. 틀리고 달라도 같이 헤쳐 나가야 하고. 바뀌는 게 많고 험한 이 많은, 이 세상에서 나도 흐릿한 앞날에 두려운데,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두려울까.

감성 사진이라는데
이전 01화 엄마일기를 시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