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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Jun 14. 2024

나를 증명하고 보호하려 돌본다면

돌봄의 미학, 갈아넣기, 인정욕구, 한결같음, 사명감


폭풍 같던 2주가 지나.. 간 후 일 줄 알았던 오늘, 우리는 아직도 폭풍우 속에 있다. 몸과 마음은 한계가 있어서 곤란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지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상담센터에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도 해 보고.숨죽여 울다가도 흐르는 냇물처럼 시간이 주는 위로 속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갈아넣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갈아 넣는 것과 같다고 했다. 알쓸신잡에서 심채경 천문학박사가 한 말인데, 어쩌다 떠오르곤 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어려운 상황으로 가득하다. 때로, 누구에게나 돌봄은 사투가 된다. 아이를 돌보거나 어르신을 돌보거나 어려운 정도가 별반 다르지 않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책에서 배웠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가 너어무 어려워서... 그런 점에서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은 한동안 바이블처럼 우리 집 책장을 자리 잡았었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남의 집 책장에도 많았을 것이다. 딸을 키울 때에는 자주 들춰봤다. 대변 색깔이 문제가 없는 것인지 기침 소리, 빈도가 일반적인 것인지. 지금은 그 작가님이 유튜버로 활동해 주심에 감사하다. 둘째를 키우면서는 코로나 시기에 자주 찾아보았다. 코로나 베이비, 전염병은 끝이 없고 무슨 접종을 놓치지 말아야 할지,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할지 유익한 내용이 무척 많다. 현명한 소아과 의사들의 조언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된다. 그렇다. 돌봄을 제공하는 자 역시 위안이 필요하다. 그것도 많이.  


가족을 돌본다는 데에 책임감이 따르며 예전에 세워 놓았던 개인적인 계획을 바꿔야 하는 것과 같은 희생이 따른다. 이러한 희생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중에서 가장 시간이 많아 보이는 엄마들이 제일 먼저 소환되기 때문이다.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게 되어 집에서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않게 된 전업 엄마는 어르신 돌봄풀타임, 파트타임 아니면 일회성으로 투입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간병을 전담하거나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다던가. 작년에 열심히 다녔던 트램펄린 점핑 센터 코치님은 친정엄마가 혈액암에 걸리셔서 정기적으로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다니느라 바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돌봄은 '타인에 대한 다정하고 애정 어린 관심'이라고 했다. 사랑과 다르지 않은 말. 사랑하는 가족, 자녀, 부모를 돌보는 것은 어렵다. 하물며 나를 사랑하는 것도, 어렵게 는 만드는 위기가 종종 일상을 공격한다! 지난 한 두 주가 내게 그러했다. 이렇듯이 어떤 사랑도 한결같기가 쉽지 않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 말고,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관심을 주는 사랑. 사랑에 이유가 없듯이 돌봄은 오로지 돌봄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인정욕구, 주체는 나


억지로 내 문제에 관심을 지 않고 내 자녀라는 돌봄의 대상에 모든 몸과 마음의 힘을 쏟아붓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돌봄이 일과의 대부분이 되면 어느 순간 그 대상의 잘 되고 못 됨에 내 기쁨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내가 잘 돌보아서가 아니라 그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고 누군가 곁에 있어 주어야 했는데 그게 나였을 뿐이다. 고로, 막 열심히 살아도 내 것이 없는 느낌과 종국에 닥칠 번아웃 또는 좌절감을 지양해야 한다. 


일할 때 역시 일이 목적이 되면 문제는 없었다. 일하면서 즐겁고 싶고 보람도 느끼고 싶거나 배울 점이 많은 동료와 교류까지 바라기 시작하면 일터에 하나씩 둘씩 불만이 싹트기 마련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남이 해준 나에 대한 평가는 불만족스럽거나 성에 차지 않기 마련이다. 업무 평가와 연봉 재협상까지. 허나, 무념무상의 경지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자체로 뿌듯함을 느끼면 불만이 끼일 곳이 없었다. 


돌봄이 전업인 나는 이참에 도장 하나 파 볼까 하고 아무 말이나 해본다. 오늘 하루 내가 생각해도 '이야, 오늘 이 부분은 진짜 잘 대처했는데?' 하면 옛다 하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고 때로는 잘 못했지만 '괜찮아'하고 하루를 잘 보냈다고 도장을 찍는 것. 남의 인정을 받으려 용쓰면 마음에 상처가 생긴다. 우습지만 그렇게 내가 만든 상처는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더 깊어진다. 그래서 내가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야 한다.



상승욕구보다 한결같음 그리고 더 큰 사명감으로


'거, 뭐 하는 거 있다고 바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자리를 지키는 데에도 노오력이 필요한 것을 몰라주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회사 같은 조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관계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가 생기는데 하물며 오래 한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한 것이다. 어릴 때는 조직을 박차고 나가서 창업을 한다던가, 가정보다 자아실현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를 우러러보기도 했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렇게 큰 세상을 향해 진전한 사람보다 그들이 만든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돌봄을 자처한 다른 이들이 감내했을 희생이 보인다. 내 사람을 위해서 한결같이 사랑을 베풀기 위해 스스로 부여한 사명감이 필수인 그들이 더 멋지다.


나는 상승욕구가 세상을 지배한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고 정주영 회장의 '해보긴 해봤어?', '보이즈 비 앰비셔스'같은 말이 두 귀와 두 눈을 사로잡았었다. 어릴 적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이 인용했던 명언들은 이제 와서 보면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이다. 


소확행, 욜로, 워라밸이 낯설지 않은 지금, 작든 크든 계속해서 꿈을 꾸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기쁜 하루를 살면서 좋은 삶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매일 보는 꼰대의 라떼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릴 줄 알게 된다던가, 통장에 찍히는 월급에 온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행복감에 젖을 줄 안다던가. 하루를 뿌듯하게 살아내고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켜냈으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일은 더 기쁘게 살겠다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세상은 바뀌고 있고 남이 좋다고 하는 것들이 내게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있다. 내가 받은 하루를 잘 살기 위해 오늘도 노오력해 본다.  


잔소리 말고, 상큼한 딸기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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