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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김 Jul 19. 2024

결혼기념일 건너뛰기

찐사랑=화+걱정+a, 넘편이 내편이 되어가는 중

꾸역꾸역 싸워도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이것저것 겪어 내고 살아내면서 연민, 동지애, 고마움이 한때 사랑했던 오빠의 늙어가는 얼굴 위에 아로새겨진다. 


어른의 찐사랑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오만가지 빛깔이지 않을까. 핑크&베이지, 블랙&옐로, 퍼플&오렌지

어울리나? 내 스타일은 아니야 싶은 조합의 빛깔들.


함께 한 시간보다 더  앞날들 우린 더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거라고. 막연히, 간절히..


찌뿌둥한 날씨에 나가자고! 하는 것도 남편이고 근처 물놀이터 가자며 아들 거 자기거 아쿠아슈즈 공들여 고르고 올여름 첫 물놀이를 나선다. 


아쿠아슈즈 정작 필요 없다던 내가 슬리퍼 신고 둘째 뒤 지근거리에서 몇천 걸음 보탠 건 안 비밀이다.



아차차, 결혼기념일이었군


올해로 결혼 15주년. 놀랍게도 이번 결혼기념일은 둘 다 그냥 넘어갔다. 우리 딸이 사춘기만 아니었다면 축하무대 세게 해 주고 손 편지에 선물도 챙겨줬을 텐데?! 누구도 따지지도 묻지도 않았다. 아마 그즈음 우리가 가족여행을 가서 대충 퉁치자는 이심전심이 통했나 보다. 이벤트 다 못 챙기게 되면은 뒤늦게 와인이라도 땄을 텐데. 이 정도로 스킵하고도 마음이 편하게 지나갈 줄이야. 이사, 전학, 그리고 남편의 전직까지 우리 삶의 모든 공간과 배경이 달라진 해. 올해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음이 통했구나. 둘째 생일이 연초라서 꼬박꼬박 숫자 풍선 준비해 사진을 찍으며 가족이 커가는 모습을 남기거나, 나는 첫째랑 남편은 둘째랑 커플 사진을 찍은 적은 있는데, 우리 둘만 사진이.. 어라, 찍은 게 언제더라, 가물가물. 우리 좀 소원했나. 

딱히?



취미부자


남편은 내 보기엔 본디 힘이 많고 체력이 좋은 사람이다. 다양한 취미를 즐기기 때문이다. 본인 피셜, 전혀 아니다고, 혈압도 엘보도 허리도 시원찮다는데. 몸에 안 좋은 것들을 즐겨서 노화를 앞당긴 게 문제라면 문제다만. 그 아프신  몸을 이끌고 게임, 골프, 배드민턴, 그리고 열대어 키우기까지. 그때그때 열중하는 분야가 옮겨갈지언정 무엇하나 버리지도 않았다. 뭐 상담사가 조언하기로는 에너지가 좋다, 취미 말고 하나에 올인하면 뭘 해도 한다던데, 아직도 유효한가요. 진정? (믿습니다. )


연애할 때부터 첫째가 태어나기 전까진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심지어 딸이 들어선 즈음 철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둘이 산중턱 오르막 라이딩을 했던 기억도 있다. 지나 보니 그 밤 난 늘 타던 자전거에 앉기가 왜 그리 불안스러웠는지 알았다지. 남편의 자전거 동아리 선후배들과 함께 미사리 라이딩에 맛집, 한강변 돌아다니기, 사진 동호회 사람들과 한양도성 출사. 수동카메라가 어색했던 나는 저녁 초보탈출 수업까지 나갔고 보케도 배웠었다고. 한때는 허브 키우기에 꽂혀 흙으로 만든 화분에 직접 키운 바질을 따다 파스타 요리도 맛있었고. 


딩크족이었다면 싸울 일 없이 잉꼬부부가 될 수 있었을까?



찐사랑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은 남편은 날 닮은 아이를 얼른 갖고 싶어 했다. 그때부터 찐사랑, 사랑과 전쟁을 찍게 될 줄 우린 몰랐지.


취미를 함께 즐길 시간이 줄어드는 것인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딸이 일곱 살이 되던 해 남편이 배드민턴을 하자고 해서 세 달 동안 레슨도 했지만, 결국 맹장이 터지고 그만두었다. 배드민턴은 해보니 적성도 맞는 것 같은데, 레슨 하러 가서 몇 게임이라도 더 쳐야 실력이 확 늘었을 텐데. 남편은 체육관에서 만난 실력자 승부사 아줌마랑 게임 뛰고는 연습 욜씨미 하라고 한마디 들었다고 내가 그만둔 것으로 생각한다만. 넘 내 멘털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으시다.


뛰는 거 땀 빼는 거 아무리 좋아하는 나라도 맞벌이 엄빠때문에 어린이집에서 세끼를 먹기도 했던 울 딸에게 일주일에 두 번 저녁 취미생활은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고 내 바닥난 체력도 문제였다. 배드민턴을 즐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코트가 꽉  차서 대기도 길고 두세 시간은 훌쩍 넘겼다. 승부욕 강한 언니들이랑 게임하려고 칠판에 이름 좀 적으려면 더 잘하는 게 더 좋지.


땀 뻘뻘 내고 귀가하면 집안일 손대기도 힘들 정도로 후들들 그렇게 쌓이는 집안일은 또 다른 두통거리 내지는 싸움거리. 그땐 서로 다름을 수용하고 차이를 인정하기가 제일 어려웠다. 사이좋을 땐 얼굴에 묻은 김치 양념도 귀여운데 사이 나쁠 땐.. 말해 뭐 해.


나와 함께 하고픈 게 참 많았던 남편. 베이징에서 살 때에는 골프 배우라고 노래를 불러댔다. 꽤 많은 시간에 돈도 썼지만 저엉말 내 가치관과도 운동 감각과도 안 맞는 거다. 같이 필드 나가보고 귀국해서 스골도 다녀보았지만. 패스. 포켓볼도 그렇고, 작은 공이랑 난 좀 안 맞나 봄.


뭐든 함께 하자는 것도 사랑이라면 맞다. 지독한 사랑. 아, 요샌 같이 하자는 게 줄었다. 서로 뼛속부터 다르다는 것을 수용해 버린 어른의 찐사랑. 용감하게 뭐가 됐든 혼자 하는 게 더 익숙했던 내가, 뭐든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남편과 같이 사는 게, 자연스러운 거니, 불가사의한 거니.



의외성


좋게 말해서 의외성. 남편은 도대체가 계획이 잘 서지 않는다는 것을 신혼이 어느 순간 끝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깨소금 볶을 때에야 뭐든 나누고 이야기했을 때이니 문제 될 게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열내고 힘든 순간을 다년간 겪고 대화가 줄어든 언제였나 명절 계획도 서지 않았다. 시댁도 시골로 귀농했고, 친정도 멀고 계획이 없으면 하루가 꼬박이라  미리 정하면 기차표라도 사는데! 어릴 때부터 멀미가 있어서 차보다는 기차를 좋아하는 나와 멀미가 뭐야? 쉬엄쉬엄 가는 남편. 달라도 너무 달라.


기적, 소문자 j


그래도 다행인 건 말이다. 기억나지 않는 언제부턴가 남편은 먼저 일정을 챙기기 시작했다. 소문자 j가 발현하는 순간을 목도하는 건 흐뭇한 일이다. 사람이 바뀌는 건 기적이란 말이다.


이번 일도 그러했다. 무엇보다 딸을 살리자고. 우리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통했고 앞뒤재지도 않고 이사를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오로지 유목적 무계획. 그런데 고맙게도 능력자 네 아빠는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는 우리의 브레드위너가 되어 주고자 주말아빠를 자처했다.(참 잘했어요.)


설거지 하나로 소리소리 지르며 싸우는 것도, 빙판길 잘 오고 있나 바들바들 걱정하는 것도, 다 사랑이라며. 그럼 우린 지독스러운 연애 중. 첫사랑 그 풋풋함만 사랑이라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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