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던 저녁
여덟 살의 아이는 아버지가 퇴근하는 늦은 저녁시간까지 밥도 먹지 않은 채 오락실을 전전했다. 그 아이는 그 시간이 그렇게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저녁밥을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는 없었고 가을바람은 시원했다. 저녁노을을 등지고 지하에 있는 오락실로 들어갔다. 오락실에 들어가기 전 아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학교선생님들에게라도 발각되면 다음날 아침은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시끄럽지만 따뜻한 오락기계의 소리들이 여덟 살의 아이를 맞이한다. 그 소리들이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다. 오락기계들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른 아침 출근 전에 아버지가 쥐어준 몇 백원은 다 사용한 지 오래였다. 그러니 허기를 채울 수도 없었고 불량식품 같은 것도 사 먹을 수 없었다.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버지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백 원이라는 큰 동전을 넣고 오락을 한다는 것은 속 좁은 아이의 기질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심심함을 해결을 해야만 하니 남들이 하는 것을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게임을 하는 것보다 남들이 하는 것을 응원하며 구경하는 것이 몇 배는 더 재미있었다.
멋지고 빠른 근육질의 남자들이 딱 달라붙는 멋진 옷을 입고 나와 불량배들을 패주는 게임이 대부분이던 시절 한 편의 영화라 생각하며 그것을 응원하는 것은 손에 짬을 쥐는 것만큼 짜릿했다. 매일 찾아오는 저녁시간이면 영화를 보는 듯 오락을 하는 사람들을 응원했지만 최종의 악당을 물리치고 보이는 엔딩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매일이 기대가 되었다.
'오늘은 누군가 반드시 마지막 악당을 처리하고 나오는 그림들을 볼 수 있을 거야!'
그런 기대를 하고 친구들이 다들 떠난 저녁이면 혼자 오락실에 입장을 하곤 했다. 때로는 오락에 집중을 하던 중고등학교 형들이 구경하는 아이가 불편했는지 꺼지라며 욕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는 그 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구석으로 가서 서러워 눈물을 흘리다 그 형들이 떠나면 다시 오락실 이곳저곳을 구경한다. 이 기계에서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저 기계에서 시간을 얼마 보낸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자신들의 거처를 찾아 오락실을 떠난다. 그러면 한두 명의 사람이 남는다. 그러면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사람들의 곁으로 가서 구경을 한다.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고 마지막 악당을 물리치고 엔딩의 그름을 보길 응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제법 긴 시간이 지나면 때로는 환희에 찬 엔딩을 볼 때도 있다. 그런 날이면 스스로가 매우 운수가 좋은 날이라 여기며 기뻐했다.
모든 사람이 떠나고 시끄러운 오락기계 소리만 들리고 더 이상 아무도 없을 때 아이는 오락기계에 앉아 조이스틱을 움직여 보기도 하고 버튼을 눌러보기도 한다. 그렇다 재수가 좋으면 누군가 넣어놓고 떠난 동전 한 닢이 작동을 해서 게임을 즐기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영 게임에 재능이 없던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금방 끝나버리고 만다. 그렇게 끝나지 않길 시간이 모두 끝나고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오락기계들의 하나둘씩 전원을 내리면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신호이기에 등 떠밀리듯 오락실을 떠난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은 번화가에 있는 몇 군데의 오락실들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영업을 한창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곳으로 신나게 그리고 희망차게 발길을 옮긴다. 그렇게 몇 군데의 오락실을 돌면 마음의 희망도 다 꺼지고 이젠 진짜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얼추 아버지가 퇴근할 시간이다. 단칸방으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잠을 잘 것이다. 아이는 뼛속 깊이 새겨진 외로움이라는 것이 이젠 외로움인 줄도 모른다. 이렇게 늦은 시간 거리를 배회해도 아이를 찾아줄 엄마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때로는 뼈에 사무치도록 아팠지만 그것만큼 자유로운 것도 없다.'
라고 말이다. 아이는 어두운 단칸방으로 돌아가며 생각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즐거운 오락실에서 보내기로 말이다. 혹시 아는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게임의 엔딩을 보게 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