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참파노 Aug 26. 2020

몸은 차갑고 가슴은 시렸고

내 편은 없었어!

눈이 정말 많이 온 오래전 겨울의 어느 날로 기억된다. 그때 나는 8살이었고 또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8살 인생 중 최초로 사회라는 곳으로 여겨지는 학교안에 있는 학급의 구성원이었다. 그렇게 눈이 시릴 만큼 눈이 많이 왔던 날 그날의 차가움을 나는 기억한다. 눈이 많이 와서 모두들 설레 할 그때 노년의 여자 선생은 우리들에게 인심을 베풀어 모두를 운동장에서 뛰어놀게 해 주었다. 다들 키가 크지 않아 발이 흰 눈 속에 푹푹 빠져 걷지 제대로 걷지 못할 나이였음에도 아이들은 사력을 다해 뛰어다니며 서로를 향해 눈을 던지곤 했다. 까르르 거리는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듯하다.
 
8살의 나는 가난했다. 마땅히 입을 옷이 여의치 않아 유아시절에 입었던 옷을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억지로 입었고 큼지막하게 듬성듬성 바느질을 한 구석도 여러 군데였다. 8살의 나는 그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사회를 구성하던 학급의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집이 잘살고 부모의 직업이 학원을 운영하던... 내 눈에는 영악해 보였던 아이로 기억된다. 그 여자아이가 나를 부르던 호칭은 따로 있었다.
 
‘거지’
 
그것이었다. 살면서 나의 정체성이 거지라는 것을 그때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하고 살지 않았다. 가난한 것과 거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나이는 되었다고 스스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지가 아닌데...’
 
스스로 생각했다. 8살의 마음은 화가 나고 분이 조금씩 차올라 갔다. 어느 날은 그 여자아이와 같이 다니던 무리들이 나를 둘러싸며 거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부여하는 정체성은 나를 짓눌렀고 또한 저항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못 들은 채 하거나 저항을 하지 않으며 그 소리를 여과 없이 듣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가 되었을 때 즈음 나는 그 영악한 여자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때 영악한 여자 아이와 그 여자 아이를 따르던 아이들은 어른처럼 팔짱을 낀 채로 그날도 나에게 거지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던 중이었다. 조금의 후회도 없었고 그동안의 분이 씻은 듯이 흘러 내려갔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여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여자 아이를 병풍처럼 둘러쌌던 아이들은 얼른 노년의 여선생에게 달려가 그 상황을 그대로 일러바쳤다. 두려웠다. 손에 땀이 쥐어졌고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은 죄책감이 선생의 겁박 앞에서 들기 시작했다.
 
“너 왜 친구를 때린 거야?”
 
노년의 여선생이 겁을 주듯 물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고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입을 열어 ‘저 애가 나에게 거지라고 했어요!’라고 하면 상황은 역전이 될 수 있었지만 학급 아이들이 모두 보는데서 나 스스로를 거지라고 알리는 말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이미 노년의 여선생은 이미 그 영악한 아이의 편이 되어 나를 심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처럼 가난하고 옷에 바느질 자국이 보이며 더욱이 폭력을 사용하는 아이에게는 손바닥을 몽둥이로 내려치는 것이 가장 어울렸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그 날 8살의 나는 고통을 호소하지도 못하고 그 여린 손바닥을 맞아야만 했다. 무서웠고 화가 났다.
 

 
그 일이 있은 뒤 나 또한 함박눈이 내리던 그 날을 기쁨으로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까르르 웃는 소리와 함께 나도 또한 그날만은 아이들과 어울려 눈밭을 뛰놀며 뒹굴었다. 그렇게 잘 놀았으면 좋았을 것을 잊을 수 없는 차가움이 그날의 나에게 찾아왔다. 아이들은 내 몸에 그리고 나의 속옷에 눈을 넣기 시작했다. 거지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 저항을 하지 못했던 나였기에 아이들은 바느질한 옷을 입는 나에게 눈을 넣으며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너무 차가웠고 가슴이 시렸다. 평소 잘 만나지 못하는 엄마가 생각이 났고 내리는 눈을 보며 유쾌했던 감정은 파괴적 감정이 되어 나의 마음으로 찾아왔다.
 
흰 눈 속에서 그런 나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나도 기쁘게 웃던 그 영악한 여자 아이가 생각이 난다. 너무나 행복해했고 기뻐했던 그 얼굴이 예뻐 보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흉하고 더러운 것은 죄가 아닌데... 벌레는 죄가 아닌데... 그 아이는 그것을 죄처럼 여겨 짓밟고 분노하며 파괴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기뻤는지도 모른다. 그 날 그 아이의 웃음은 참 따뜻해 보였는데 나의 몸은 너무 차가웠고 마음은 너무 시렸다. 1988년의 겨울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삼립빵과 딸기맛 서울우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