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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Jan 22. 2021

마지막 보이스카웃

안성탕면

소년은 보이스카웃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보이스카웃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갖추어졌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이 4학년이 되기만 하면 보이스카웃을 하겠노라며 학수고대하면서 그 시간을 기다리곤 했다. 아이들의 눈에는 멋지게 보이스카웃 복장을 차려입은 고학년 형들은 ‘어른’ 그 자체였다. 소년은 아마도 그때 일종의 근사한 소년만의 조직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철없고 그다지 볼품이 없던 소년의 일상에 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그 어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했던 것 말이다. 하지만 소년의 집에는 돈이 없었다. 가까스로 가정을 꾸릴 한 달의 돈이 전부였기에 (어쩌면 그 마저도 모자란) 거기서 소년이 보이스카웃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말이 되면 그 아이들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다. 다들 근사하게 보이스카웃 복장을 차려입고 관광버스에 올라타고 우리나라의 곳곳을 찾아다니며 다 같이 어울려 캠핑 같은 것을 하곤 했다. 물론 그 가운데는 ‘걸스카웃’이라 불리는 예쁘고 고운 여자아이들도 끼어 있었다. 그 사실이 소년의 가슴을 더 애타게 했다. 주말에 소년을 맞이해 주었던 것은 해외의 만화 시리즈나 저녁에 볼 법한 코미디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소년은 그것들을 시청하면서도 항상 있는 곳과 다른 그 어딘가를 항상 꿈꾸곤 했다. 하지만 간절히 꿈꾸고 바라던 그것은 절대로 그리고 매정하리만큼 소년에게 와주지 않았다.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과 그리고 표현해서도 안 되는 슬픔이 소년의 마음에 가득했다. 하지만 더 애석했던 것은 그것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애석함을 부모가 알게 되는 날에는 소년이 가진 애석함보다 몇 곱절은 더 큰 애석함을 부모의 가슴에 심어야 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4학년이 되면서 소년은 목적을 갖기 시작했다. 보이스카웃을 하는 녀석과 반드시 친한 친구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 목적은 아주 음흉했고 또한 강렬했으며 원대했다. 다행히도 소년이 한 목표물을 설정하고 그 보이스카웃 대원에게 접근했을 때 그 보이스카웃 대원은 가난했던 소년을 싫어하지 않았다. 소년은 웃기지 않은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대원 아이의 기분을 맞추며 웃기려 애썼다. 간절했다. 그 대원 아이의 마음을 얻는 것 말이다. 그리고 노력하는 것에 비례하지 않고도 선량했던 그 대원 아이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 접근해서 소년이 원했던 것은 보이스카웃에 대한 소식들이었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 떠나며 가서는 무엇을 하는지 캠핑을 할 적에는 텐트 안에서 몇 명이 같이 자는 것들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쳐 소년 또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스스로를 다그쳤다.
 
소년은 언젠가부터 월요일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월요일 아침에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교실에 다급하게 들어서면 황급히 그 대원 아이부터 찾았다. 그리고는 대원 아이로부터 주말에는 어디로 갔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를 캐물어보며 소년 자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가끔 걸스카웃이었던 옆 반의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소식이라도 들으면 소년은 그 여자 아이와 한 공간에 있었던 것처럼 설레곤 했다. 그렇게라도 소년은 자신의 강렬할 욕망을 채우고 채웠다. 그 이야기를 차츰 자신을 채워갈 때 즈음 소년 안에 있던 자존감도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식 보이스카웃 대원이라도 된 것 마냥 착각이란 것이 소년을 지배하기도 했다.
 
“안성탕면 하나 사서 같이 부셔 먹을까?”
 

어느 날 길을 걷던 소년이 무언가 각오한 듯 그 대원 아이에게 물었다. 그날은 햇빛이 곱게 가을 오후였다. 같은 반 아이들은 주변에 없었고 소년은 자신의 계산적인 행동을 드러내어 보이기 충분한 타이밍이었다.
 
“라면? 부셔 먹자고? 돈 있어? 난 없는데...”
 
소년의 말을 들은 대원 아이가 되물었다. 그때 소년의 주머니 안에는 쓰지 않고 절실하게 모아둔 200원이 있었고 그 돈으로 2 봉지의 안성탕면을 살 수 있었다. 자신의 계산이 점점 들어맞아 가는 것을 느낀 소년이었다.
 
“응! 200원!”
 
소년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200원이면 두 봉지 사자고? 한 봉지만 사서 나눠 먹자?”
 
대원 아이가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 채 제안했다.
 
“한 봉지만 사면 아쉬우니까 두 봉지 사서 하나는 지금 먹고 하나는 너희 집에 가서 놀다 먹자?”
 
“우리 집?”
 
“그래 너희 집!”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을 들었던 대원 아이였지만 뜻 밖에 수확에 소년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소년이 슈퍼로 달려 들어가 안성탕면 두 봉지를 사 왔고 둘은 한 봉지를 부숴 수프를 뿌리고 햇살 아래 걸으며 사이좋게 나누어먹었다. 라면 한 봉지를 다 나누어 먹을 때 즈음 대원 아이의 집에 도착을 했다. 아이의 집은 소박하지만 멋들어진 단독 주택이었다. 좁았지만 잔디도 있었다. 아이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안심했다. 소년의 계산에 의하면 그 집에는 어른들이 있으면 안 되었다. 소년은 집에 도착해서 보이스카웃을 하려면 돈은 얼마가 드는지를 물었다. 그동안 물어왔던 이야기가 경험에 관한 것이라면 그날 그 집에서 물었던 이야기는 소년이 직접적으로 체감해야만 하는 비용의 내용들이었다. 대원 아이의 말을 들으며 소년은 그동안의 착각들이 조금씩 씻겨져 내려갔다. 소년의 형편으로는 턱도 없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복장이며 달에 내는 회비들 같은 것 말이다. 비참했지만 소년은 그래도 아이로부터 전해 들은 무용담마저 가슴에서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집에 온 목적을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물어볼게 도 있는데... 6학년 때까지 보이스카웃 하면 몸이 커질 텐데 그때는 옷을 또 사나?”
 
 

간절했던 소년은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손에 묻어있던 수프를 핥아먹던 아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들은 소년이 더욱 큰 용기를 과감하게 내어 아이에게 물었다.
 
“나... 한 번만 입어 봐도 되냐? 그 보이스카웃 복장 말이야! 나는 매일 너한테 듣기만 했지 입어보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오늘 내가 라면도 샀으니까 한번만 입어보면 안 되냐?”
 
난감해할 줄 알았던 대원 아이가 밝게 웃더니 자기 방문을 열고 옷장으로 갔다. 그 찰나 소년은 대원 아이의 스스로의 방이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곧 대원 아이가 꺼내 올 보이스카웃의 복장이었다. 곧 그 아이의 손에 들려서 밝고 빛나는 그 옷에 거실로 나왔다.
 
“별거 없어! 그리고 이 옷 입으면 피부가 따가워!”
 
불평하듯 대원 아이가 말했다. 옷이 거실 바닥에 놓이자 소년은 한 동안 그 옷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떨리는 손으로 그 옷들의 감촉을 느꼈다. 까칠까칠했지만 소년의 마음을 흥분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이내 자신의 허름한 겉옷을 벗고 보이스카웃의 바지 입고 양말을 신었으며 윗옷을 입었다. 어깨 죽지에 날개를 다는 기분이 소년의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윗옷을 걸쳤을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제법 멋이 있었다. 근사했고 준수했다. 모자를 집어 들어 머리에 쓰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노란색 손수건 같은 것을 돌돌 말아서 어깨로 둘러 목으로 감싸서 밴드 같은 것으로 조였다. 이내 완성된 복장을 착용한 자신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 보였다. 행복이라는 말이 어울렸을 것이다. 소년은 행복했다. 소년이 거울을 한참 뚫어져라 볼 때 즈음 대원 아이가 물었다.
 
“라면 이거 하나 더 먹으면 안 되냐?”
 
“.....”
 
거울에 빠져있던 소년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안성탕면 안 먹어? 우리 집 오면 먹자면서?”
 
대원 아이가 다시 물었다. 갑자기 소년은 거울에서 고개를 돌려 대원 아이를 쳐다보았다.
 
“너 혼자 다 먹어! 난 배가 부르다.”
 
소년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아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진짜로 소년은 배가 불렀다. 라면 때문인지 아니면 복장 때문인지 몰랐지만 큰 포만감이 소년을 사로잡았다. 그 포만감은 너무나 달콤했다. 그리고는 그 옷을 입고 집안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소년은 자신이 그 집안의 일원 인양 그 기분들을 한껏 즐기기 시작했다. 그 역시 행복했다. 대원 아이가 야무지게 먹고 있는 안성탕면이 눈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자신은 이미 그 순간 정식 보이스카웃 대원과도 같은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그 감정을 마음에 담고 또 담았다. ‘이 정도면 잊지 못하겠지’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 그 기분을 마음에 담았다.
 

 
그리고 옷을 다시 벗어 아이에게 반납하고 허름한 자신의 옷을 입고 돌아오는 시간이 왔을 때 소년은 생각했다. 그동안의 들었던 무용담과 근사한 복장을 착용했던 자신의 모습을 결합시키며 마음속으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소년의 두 뺨을 어루만질 때쯤 소년은 마음의 입으로 말했다.
 
‘내가 마지막 보이스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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