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선물
싸구려 시계를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것은 전자시계였고 당시 유행하던 TV 외화의 제목을 주제로 한 시계였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는 그 시계의 모양이 지극히 촌스러웠지만 그런 것은 개의치 않고 나만의 소유물이 생겼다는 사실에 설렜고 설렜다. 그 시계를 선물한 사람은 우리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직업이 일정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직장은 쇠를 깎는 밀링이라는 일을 하는 곳이었고 그런 곳마저 의지를 가지고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는 생활을 할 수 없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술 때문이었다. 그 술이 아버지를 근면 성실하게 만들지 못했고 아버지를 가난하게 만들었고 덩달아 나까지 가난하게 만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웬일인지 나에게 어느 날 시계를 선물했다. 이제 생각해보지만 장날이면 길에서 널어놓고 파는 시계 같은 것이었다. 새파란 원색에다가 시간을 맞추는 버튼은 두 개가 전부였고 누르면 삑삑 하는 소리가 났었다. 시계의 크기는 백 원짜리 동전만 했다. 그 시계를 차고 있노라면 그 시계에 디자인되어 그려져 있는 TV 외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그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아버지는 그렇게도 사랑하는 소주를 사 먹는 값을 아껴서 그 시계를 장만했으리라! 아들을 위해서라면 소주야 한 번쯤은 안 먹어도 된다는 기쁨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으리라! 그 설렘을 가지고 그는 나를 만나 나에게 시계를 건넸다. 생전가야 선물이란 것을 부모에게서 좀처럼 받아 본 적이 없던 나는 그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 순간은 불편했다고 하는 말이 옳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시계가 없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나에게는 직장을 다니는 아버지처럼 보이기 위해 전 직장의 작업복을 입고 다녔던 것 같았다. 그런 근무복의 아버지 팔에는 시계가 없었다. 아버지의 근무복에서는 기름 냄새가 나곤 했다. 길을 가다가 다른 아저씨의 품에서 그 기름 냄새를 맡게 되면 아버지를 상고하곤 했다.
나의 손목에는 시계가 있었지만 아버지의 팔에는 시계가 없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불안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직장은 진짜로 없지만 늘 거짓으로 입고 다니는 저 작업복을 착용한 팔 위로 시계가 한 개 묶여 있다면 아버지는 좀 더 근사한 직장인으로 보일 것이 분명했다. 설사 직장이 없더라고 말이다. 나에게는 좀 더 근사한 아버지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 문방구에서 나의 손목시계보다 더 멋지고 근사한 손목시계가 걸렸다. 그 시계를 얻는 방법은 이랬다.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인아저씨에게 주고 종이 두 개를 잡아 뜯어 당첨이 되면 시계를 획득하는 ‘뽑기’였다. 아이들은 그 시계를 획득하기 위해 가진 동전을 다 털어 넣었지만 그 시계를 획들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단 돈 100원에 그 시계를 획득했다.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시계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수 만 배 튀겨 낸 기쁨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곧장 아버지가 선물해준 시계를 풀어버리고 뽑기로 획득한 고가의 전자시계를 손목에 휘감았다. 아버지가 선물해준 시계가 나를 하이틴 스타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면 고가의 전자시계는 나를 특수요원으로 만들어 주는 기분이 들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학교와 학급에서도 오직 나만이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나는 아버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낯임에도 여전히 취기 어렸던 아버지는 자신의 선물해준 시계를 아들이 착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는지 나의 팔을 힐끔힐끔 보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좀 더 멋지고 고급스러운 고가의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못 보던 거네... 아버지가 준건 어디 있어?”
아버지가 물었다.
“응! 그거는 잘 보관하고 있어! 이거 내가 뽑기 해서 뽑은 거야!”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고 또한 미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마음속에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의 고급스러운 새 시계를 아버지의 손목에 채우고 좀 더 근사한 아버지를 만들어 드리느냐? 하는 마음과 아니면 그 마음을 철저히 무시하고 이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여 넘기고 이 아름다운 고급스러운 시계를 계속 내가 영위해 나가느냐? 하는 마음이 충돌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격렬히 말이다. 하지만 그때 내 나이는 9살이었다. 그다지도 큰 배려를 입고 살아본 적이 없는 아이는 또한 누군가에게 배려를 할 내면의 힘이 없었다. 그것이 자기 아버지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아이의 이기적인 마음이 철저히 이겨버려 우스꽝스럽게도 아버지의 손목에는 파란색 어린이용 손목시계가 달리게 되었다. 취기에 비틀거리며 그 시계를 차고 뒤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하지만 이 미안한 순간이 끝나면 고급스러운 손목시계를 소유했다는 쾌감이 이 미안한 감정을 이겨버릴 것을 알기에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배려라는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즈음 아버지는 세상에 없었다. 배려를 아버지를 향하여 베풀려 해도 이젠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배려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시간을 되돌려 몇 번이고 그날의 골목으로 돌아가 어린이용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아버지를 등 뒤에서 부르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에게 달려가 나의 손에 달려있던 맞지도 않는 어른용 고급 손목시계를 아버지에게 건네는 상상 말이다. 그것을 몇 번이고 아쉬워하고 슬퍼했다.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이제는 정말 그럴 수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되돌려 그 고급 손목시계를 직장은 없지만 늘 나에게는 직장인으로 보이기 위해 작업복을 입고 다녔던 아버지의 손목에 달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더욱더 배려를 알게 된 지금은 없는 아버지에게 더 주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이제는 촌스러워진 어렸을 적의 고급 손목시계보다 더 고귀하고 진귀한 나의 시간을 아버지에게 주고 싶다. 다만 나의 이 유한한 시간을 얼마 분절하여 아버지에게 주어 아버지와 함께해 그 시간 속에서 아버지의 손목에 시계를 달아 줄 수 있다면 나의 이 유한한 시간을 몇 번이고 잘라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