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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ug 17. 2021

참회록

마크의 구슬

마크(Mark)에게서는 늘 구슬이 짤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크에게서 구슬이 짤랑 거리는 소리가 났던 이유는 마크는 많은 양의 구슬을 소유했었기 때문이었다. 마크는 구슬치기로 그 구슬들을 획득한 것이 아니었다. 마크는 구슬치기를 같이 할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크는 스스로의 만족감을 얻기 위해 동전을 모아 구슬을 잔뜩 사서 그것들을 주머니에 넣고 흡족한 모습으로 다녔다. 마크의 몸에서는 늘 썩는 냄새가 났다. 썩는 냄새뿐 아니라 말투도 어눌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구사하는 언어력을 구사하지도 못했다. 한글을 제대로 습득하지도 못했고 늘 지진아들이 모여 있는 특수반에서 한글을 익히기에도 온갖 노력이 필요했던 아이로 기억된다. 아이들은 그런 마크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 그냥 마크가 싫었던 것이다. 마크의 냄새도 싫었고 친구가 없는 슬픔도 많은 구슬이 짤랑거리는 소리로 달래려는 마크의 그 순박한 마음마저도 싫어했다. 그래서 늘 마크를 괴롭히고 때렸다. 아이들이 마크를 못살게 굴 때면 마크는 과격한 욕을 하며 소리를 지르거나 침을 손에 발라 상대 아이들에 얼굴에 문질러 주었다. 그것이 마크가 할 수 있는 저항의 전부였다. 그런 저항을 한 번 하고 나면 더욱더 큰 고통이 마크를 맞이했다.

 

어린 나이에 그렇게 슬픈 삶을 이어가던 마크가 나도 싫었다.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는 마크의 모습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도 때로는 마크를 때리고 마크를 욕했다. 그러면 속이 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대로 순탄하던 나의 어린 삶의 굴레에 느닷없이 장애물이 등장했다. 바로 마크가 내가 다니던 교회의 주일 학교를 출석하기 시작했다. 당시 주일학교에서는 부모의 사랑이 많이 부족해 보이던 내가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지만 마크가 온 뒤로는 부모의 사랑이 더 핍절한 마크가 그 사랑을 독차지하기 시작했다. 주일 학교 선생님들은 언제고 냄새나는 마크의 몸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끌어안았고 때가 얼룩지고 손톱에 검은 때가 잔뜩 낀 마크의 손을 어루만졌다. 어렸던 나는 질투로 온 몸이 불타올랐다. 언제고 학교에서 마크를 보면 마크에게 더욱 욕을 했고 더욱 때려주었다. 마크는 분을 참지 못해 저항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교회에서 나의 못된 기행들을 선생님들에게 일러 줄만 한데 그렇지 않았다. 늘 주일 학교 선생님들의 품 안에서 평온한 눈빛을 보일 뿐이었다. 나는 마크의 그 평안을 빼앗고 짓밟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선생님들의 품 안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렸던 나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마크는 큰 장애물이요 짓밟아야 할 벌레와도 같았다.

 

주일학교의 학생이던 우리 반 아이들은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늘 배고팠고 진기한 음식들을 간식으로 주던 교회가 너무 좋았다. 예수님의 사랑이야 저 뒤로 하고도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것들은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늘 고급으로 나오던 교회의 간식은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나에게 늘 만족감을 주었다. 난 마크가 그 간식을 같이 먹는 것이 치가 떨리게 싫었다.

 

‘왜 마크 같은 아이가 나랑 똑같은 간식을 먹어야 하지? 마크에게 이 간식은 너무 과분해!’

 

라는 것이 어린 나의 생각이었다. 더욱더 화가 났던 것은 선생님들은 언제고 마크에게 간식을 곱절로 챙겨주곤 했다. 마크만 아니었다면 그 간식은 분명 어렸던 나에게 돌아왔으리라! 나는 마크가 교회에서 말하던 사탄보다 더 사악해 보였다. 그의 멍청한 웃음이 사악해 보였고 그의 냄새와 더러운 차림새가 사악해 보였다. 파괴하고 싶었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우리 반 선생님이 아파서 교회를 올 수 없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머리를 모은 우리 반 아이들은 다 같이 선생님의 집을 문병 차원에서 방문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우리 근처에서 서성이던 마크도 우리의 무리에 끼어들려 하는 것 같았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는 마크를 따돌려보려고 갖은 애를 썼다. 그렇지만 마크는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만약 선생님의 집에 방문을 한다면 선생님은 우리에게 간식을 줄 것이고 마크도 그것을 먹게 될 터인데 그 모습을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은 참을 수 없었다. 반 아이들은 마크를 따돌린 채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크도 우리를 향해 따라 뛰기 시작했다. 마크의 달리기는 무척이나 느렸다. 그렇지만 마크는 포기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뛰고 뛰었다. 마크가 한 걸음씩 뛸 적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구슬 소리였다. 주머니에서 그 구슬이 빠질까 봐 마크는 주머니를 부여잡고 불편하게 뛰고 또 뛰었다. 나는 어리석은 영웅심에 반 아이들을 먼저 보낼 생각을 했다. 걸음을 돌려 마크에게로 다가갔다. 마크를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을 셈이었다. 마크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마크가 애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많은 양의 구슬을 꺼내 나에게로 내밀며 말했다.

 

“나도 가게 해줘! 이 구슬 줄게!”

 

나는 마크에게서 그 구술을 넘겨받은 뒤 그대로 길바닥에 뿌리고 뒤돌아서 아이들을 향해 달아났다. 마크는 그 자리에 서서 나와 길에 뿌려진 구슬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구슬을 주우려다가 그것들을 포기하고 다시 우리를 향해 뛰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건대 마크가 원했던 것은 아마 간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몸부림치고 거절해도 뜨거운 인두로 생살을 지지며 생기는 낙인처럼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잊고자 교회로 왔을 것이고 우리 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왔을 것이고 선생님의 품으로 왔을 것이다. 그날 난 그런 마크의 유리구슬 같은 애절한 마음을 길거리에 버린 것이다. 그런 악을 11살의 내가 저질렀다. 구슬과 우리를 번갈아 보며 어떤 것을 포기할지 갈등하던 11살의 마크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나는 마크에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결국 그날 선생님의 집에 우리 모두는 도착했지만 선생님이 너무 아파서 우리는 선생님의 집에 갈 수도 없었고 간식을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집 앞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마크도 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갔다. 어렸던 나는 내심 바랬다. 마크가 구슬이 뿌려진 곳으로 얼른 돌아가서 그 구슬을 주머니 속으로 다시 주워 담길 말이다.

 

그날이 지난 후 나는 점점 어른이 되어갔다. 삶에서 나 또한 생살을 인두로 지지는 듯 한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럴 때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전능자를 향한 원망과 분노가 많이 일었다. 그렇지만 그날의 사건을 생각하면 마크에게 행했던 삶의 고통을 돌려받는 다고 생각하니 전능자 앞에서 때때로 숙연해질 따름일뿐더러 나의 고통이 당연하다고까지 여겨졌다.

 


시간을 돌리고 싶다. 그리고 오늘은 마크에게 참회를 하고 싶다. 참회를 한 뒤 마크에게 말하고 싶다.

 

“마크! 달려 봐! 짤랑거리는 구슬 소리 좀 들어보게!”

 

오늘, 유난히 마크의 짤랑 거리는 구슬소리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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